전설로 돌아간 이종범, 짧은 이별 긴 여운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2.05.27 10: 15

짧은 이별이었으니 긴 여운을 남겼다.
이종범(42) 바람의 아들, 야구천재 등 수 많은 닉네임을 뒤로 하고 전설로 돌아갔다. 지난 26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성대하고도 의미있는 고별식을 통해 팬들과 작별했다. 그는 이제 현실의 별이 아닌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의미를 남기고 추억을 담은 은퇴식이었다.
수 많은 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운집했다. 이미 예매분 1만1500장은 일찌감치 팔렸고 오후 1시52분에 현장 판매분 1000장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간 팬들도 많았다. 대부분 이종범의 이름과 배견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찾았다. 1시간 동안 팬사인회에서 500명을 했으나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선수단 26명은 이종범 유니폼을 모두 입고 그라운드에 나섰다. 이종범이 은퇴경기를 못하자 헌정경기를 펼친 것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실제로 경기 내용도 박진감이 넘쳤다. 엎치락 뒤치락 공방전을 벌였고 8회말 2사후 송산의 결승 2루타로 승리했다. 전설의 헌정경기에서 재역전승을 거두자 야구장을 가득채운 관중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이종범의 마음으로 5연승을 따낸 선수들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선동렬 감독이나 이종범도 마찬가지였다.
경기후 은퇴식은 뜻깊었다. 패러글라이더을 타고 하늘에서 날아온 이종범의 등장은 강렬했다. 마치 지난 93년 해태에 입단해 야구천재로 그라운드를 지배했던 그의 등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때도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였다. 모교와 프로 스승들이 이종범이 뛰었던 교정과 야구장의 흙을 담아 전달한 것도 의미 깊었다. 그는 스승들과 함께 자리하면서 34년간의 야구인생을 반추했다. 
유니폼을 벗어 구단에 반납할 때 그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단추를 하나 하나 풀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34년 동안 입었던 선수 유니폼. 프로에서 19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던 유니폼의 탈의식을 통해 야구인생을 벗는 의식이었다. 구단은 유니폼을 받아 KBO에 전달했고 야구박물관에 영구보관될 것이다.
그리고 김조호 단장이 배번 7번을 영구결번으로 선언했을때 대형 상의 유니폼이 두 벌이 전광판에 내걸렸다. 하얀색 홈 유니폼과 빨간색 원정 유니폼이었다. 비로소 팬들에게 영광과 추억을 안겨준 야구천재의 배번 7번이 전설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종범은 중학교 선수인 아들에게 은퇴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선수로서 자신처럼 크게 성공해 성대한 은퇴식을 하기 바랬기 때문이었다.  이종범의 은퇴식을 지켜본 아들 정후군(14)은 "나도 아빠처럼 멋있게 은퇴식을 하겠다"고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빠의 84 도루도 도전해보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새로운 전설이 잉태되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장면은 선동렬 감독과의 포옹이었다. 이종범이 팬들에게 큰 절을 하고 자동차에 올라타 퍼레이드를 마치면서 공식 은퇴식을 끝났다. 하늘에서 연신 불꽃이 터지면서 화려한 은퇴식은 정점을 향했다. 그리고 덕아웃으로 돌아와 도열한 후배들과 모두 포옹을 했다.
은퇴식 내내 덕아웃에 서서 박수를 치며 식을 지켜본 선동렬 감독이 이종범과 마지막 이별을 위해 끝에 섰다. 이종범은 마지막으로 선 감독과 손을 잡고 깊은 포옹을 했다. "수고했다"는 말 뿐이었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했을까. 지난 3월 은퇴를 놓고 미묘한 상황을 연출했던 그들이지만 모든 짐을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선 감독은 "종범이가 뜻깊고 화려한 은퇴식이었을 것이다. 다들 종범이를 위해 열심히 싸워 경기도 이겼고 은퇴식도 훌륭했다. 많은 선수들에게는 부러운 은퇴식이다"고 말했다. 팬들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최고의 은퇴식을 즐기고 돌아갔다. 모두들 감동을 안고 이종범의 이름을 가슴에 새겼다. 34년의 야구인생에 비하면 짧고도 짧은 은퇴식이었지만 그 여운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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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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