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경기가 두 팀의 운명을 바꿨다. 서로를 '숙적'으로 규정했던 한일전의 결과가 세계예선전의 판도를 바꿔놨다.
런던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한 4장의 티켓을 걸고 펼쳐지는 올림픽 세계예선전이 27일 펼쳐지는 최종전만을 남겨놓고 있다. 태국과 쿠바의 최종일 첫 번째 경기가 끝난 가운데 4장의 본선 진출 티켓 중 2장이 이미 주인을 찾았다. 일찌감치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세계 최강' 러시아와 '숙적' 일본을 잡아내며 기세가 오른 한국이 그 주인공이다.
세계예선전 첫 경기에서 쿠바를 3-0으로 물리치며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던 한국은 러시아와 세르비아에 연패하며 올림픽 진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여기에 태국이 세르비아를 3-0으로 잡아내며 아시아 1위 진출권을 둘러싼 라이벌로 급부상해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3차전이 끝난 후까지만 해도 한국은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따져봐야 했다. 그러나 예선전 4차전의 승리가 한국의 운명을 바꿔놨다. 이번 예선전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이자 자존심을 걸고 물러날 수 없는 경기였던 일본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단숨에 우위를 점하게 된 것.
한국과 일본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 4차전 한일전은 당초 모두가 일본의 우세를 점쳤다. 세계 랭킹 3위 일본은 터키리그 진출이 결정된 기무라 사오리와 한국전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코다 사오리, 에바타 유키코 등이 총출동했다. 3전 전승으로 세계예선전 무패를 달리며 기세가 올라있던 일본에 비해 세계랭킹 13위 한국은 러시아-세르비아전 2연패로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일본이라는 특별함 때문일까. 경기 시작과 동시에 한국은 일본을 무섭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자국의 우세를 예상했던 중계진이 당황할 정도였다. 김연경은 물론 한송이와 교체 투입된 김희진이 맹활약하면서 일본이 무너져 내렸다. 일본이 자랑하는 에이스 기무라는 자신을 노린 목적타 서브에 휘청거렸다.
결국 한국은 일본전 3-1 승리를 거두며 길고 길었던 1진 상대 22연패를 마감하고 1승을 추가했다. 승리를 자신했던 일본 선수들은 한동안 코트에서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경기를 중계했던 일본의 TBS가 끊임없이 강조했던 '숙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 한일전을 계기로 양 팀의 판도가 급격히 바뀌었다. 무난하게 상위 3개 팀 안에 들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할 것으로 여겨졌던 일본은 이후 쿠바전에서 3-2 진땀승을 거두고 '세계 최강' 러시아에 0-3으로 패하며 2경기에서 승점 2점을 챙기는 데 그쳤다. 러시아에 이어 부동의 2위였던 일본이 승점 11점으로 4위로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기세가 올랐다. 일본전을 승리로 장식한 후 최약체 대만을 만나 수월하게 3-0 승리를 거뒀고 올림픽 본선 진출의 마지막 고비로 여겨지던 까다로운 상대 태국도 3-0으로 제압했다. 3연승으로 승승장구하며 최종전만을 남겨둔 지금 한국은 승점 12점에 세트 득실에서 세르비아에 앞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급해진 쪽은 일본이다. 태국이 최종전에서 쿠바를 세트스코어 3-1로 잡아내며 승점 3점을 챙긴 덕분에 일본은 세르비아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세르비아전에 설령 이기지 못하더라도 세트스코어 3-2로 패해 승점 1점을 확보한다면 올림픽 본선 진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이 3-0, 3-1로 패해 승점 0점에 그칠 경우 태국이 티켓을 따낸다.
문제는 세르비아가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의 스포츠닛폰은 "2-3으로 지더라도 올림픽 진출이 결정되는 유리한 상황"이라고 전하면서도 세르비아를 "러시아급의 높이를 자랑하는 상대 전적 2승4패의 난적"으로 평해 어려운 경기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여유로운 상황에서 일본보다 먼저 올림픽 진출을 확정짓고 페루와 최종전을 치르게 됐다. 페루에 패하더라도 한국(득 13세트·실 10세트)이 태국(득 12세트·실 10세트)을 세트 득실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상황이지만 한국은 상대 전적에서 33전22승11패로 앞서있는 페루를 상대로 부담 없이 승부를 결정지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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