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발투수에게 1승은 중요한 의미를 갖기 마련이지만, 외국인투수에겐 그것이 더 크게 다가온다. 계약 세부조건 가운데 승수에 따라 옵션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자리 자체가 위험해 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일부 외국인투수는 승리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야수나 불펜진의 실수로 승리가 날아가면 날카로운 반응을 내 놓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인지상정이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한국 무대에선 '용병'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여기 조금 다른 외국인선수가 있다. 벌써 한국에서만 3년째 활약하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우완 라이언 사도스키(30)가 그 주인공이다. 2010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고 올 시즌을 앞두고는 메이저리그 재도전과 한국무대 잔류 사이에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갈등을 하던 그를 한국에 붙잡아 둔 것은 팀 동료들, 그리고 열광적인 롯데 팬들이었다.
기량이 검증된 선수이기에 올해도 변함없는 활약을 기대했지만 사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한국 무대에서 4월 달엔 단 1승도 없던 사도스키는 올해도 그 징크스를 이어갔다. 게다가 7차례 등판할 때까지 승리를 거두지 못해 점점 입지가 좁아져오고 있던 상황. 일부에서는 이제 분석이 끝났다며 비관론을 펼치기도 했다.

사도스키의 시즌 첫 승리는 20일 사직 KIA 타이거즈 전에서 이뤄졌다. 7전8기 끝에 이룬 성과였다. 그날 사도스키는 5이닝동안 피안타 5개와 볼넷 3개를 허용하는 등 여전히 고전했으나 1실점으로 KIA 타선을 묶으며 감격의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사도스키는 시즌 첫 승보다 팀 승리가 훨씬 가치 있다는 반응이었다. "올 시즌 (내가 선발로 나갔던)8경기에서 5번 승리를 거뒀다. 사실 내 1승이 중요한 것보다 팀이 1승을 추가한 게 더 큰 의미가 있다"라는 그의 승리 소감은 외국인투수의 단순한 립서비스 만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지난 주 대구구장에서 벌어졌던 삼성 라이온즈와의 주중 3연전에서 사도스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사도스키는 승리가 늦어진 것에 대해 "내 공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LG-넥센-삼성(3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을 상대로 경기 내용도 괜찮았기에 (첫 승리를) 신경쓰지 않았다"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대신 최근 사도스키를 괴롭혔던 건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이었다. 4월 순항하던 롯데는 5월 중순까지 비틀거리며 한때 5할 승률을 위협받기도 했다. 그는 "첫 승보다 팀 자체가 힘든 시점이라서 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도스키의 통역을 맡고 있는 롯데 박준혁 대리도 "다우(사도스키의 애칭)가 팀 승리를 먼저 챙기는 건 결코 가식이 아니다. 자기 것만 챙기기 바쁜 다른 외국인선수와 달리 다우는 이제 완전한 롯데 선수다. 2군에서 신인선수가 처음 올라오면 조언을 아끼지 않고 투수들에게 노하우 전수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이젠 선수들이 다우를 외국인선수가 아닌 팀 선배로 대접한다"고 귀띔했다.
"한 경기 한 경기 집중할 뿐"이라는 사도스키에 1승을 거둔 이후 상승세를 탈 것 같지 않냐고 묻자 그는 "어제는 어제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의 승리보다 팀 승리를 앞으로 내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도스키는 "사실 팬들이 기억하는 건 어느 팀이 우승했냐는 것이다. (개인이 몇 승을 거뒀는지) 나머지는 다 잊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기는 데 기여하는 것만 생각한다"고 밝혔다.
올 시즌 사도스키의 성적은 9경기에서 2승 2패 평균자책점 4.68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사도스키가 등판했던 9번의 경기 가운데 6번 팀이 승리(승률 .667)를 거둬 팀 승률(.553)보다 높다. 승리와 직결되진 않았지만 퀄리티스타트도 5차례나 기록하며 제 몫을 다 해내고 있다.
이러한 사도스키의 팀에 대한 헌신, 그리고 팀 승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모습은 결국 한국무대 첫 완투승(26일 잠실 두산전 9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이어졌다.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이제 사도스키는 상승세를 탔다. "팬들은 우승만을 기억한다"고 말한 사도스키가 올 시즌 롯데 팬들에게 깊게 각인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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