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타자엔 좌투수' 공식 흔들…원포인트 무용론 대두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5.30 10: 40

# SCENE 1 - 4월 19일 한화와 LG의 경기가 벌어진 청주구장. 류현진과 이승우의 선발 맞대결이 펼쳐졌던 이날 LG는 0-0으로 맞선 9회초 선두타자 정성훈이 류현진을 두들겨 극적인 솔로홈런을 뽑아내 한 점 앞서가며 LG는 승기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김기태 감독은 좌완 원포인트 전문요원인 베테랑 류택현을 9회말 마운드에 올렸다. 한화의 첫 타자인 좌타자 장성호를 잡기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류택현은 장성호에 곧바로 동점 솔로포를 허용하고 말았다.
# SCENE 2 - 김병현-류현진의 선발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지난 25일 목동 넥센-한화전은 물고 물리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한화는 1-2로 뒤진 8회 선두타자 오재필이 안타를 치고 나갔고, 그러자 넥센은 장성호를 상대하기 위해 좌완 오재영을 냈다. 하지만 오재영은 장성호에도 안타를 허용한 뒤 김태균에 희생플라이를 내줘 결국 동점을 초래했다. 다음 타자는 최진행, 이쯤 되면 우완투수를 낼 법도 하지만 김시진 감독은 오재영을 그대로 던지게 했고 결국 역전 투런포를 맞고 말았다. 하지만 오재영은 이후 5타자 연속 범타를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올 시즌 승부처에서 좌완투수들을 다르게 활용한 사례다. 첫 번째 장면에선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좌투수를 냈다 결정적인 한 방을 얻어맞았다. 두 번째 장면은 지난해까지 좌완 원포인트로 뛰었던 선수를 우타자가 등장해도 그대로 뒀다가 좋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 현장의 지도자들은 투수교체야 말로 가장 어렵다고 호소하고, 또한 결과론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좌완 원포인트 투수 기용의 해답은 무엇일까.

▲ '라루사이즘'에서 파생된 원포인트, 과연 상식인가
지금이야 선발-중간계투-롱 릴리프-좌완 원포인트-셋업맨-마무리 등으로 투수들이 분업화 되어있는 게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국내 프로야구엔 전 LG 이광환 감독이 1990년대가 돼서야 들여왔다. 투수의 생명을 연장하고 승리확률을 높여주는 투수 분업, 즉 '라루사이즘'은 1980년대 후반 토니 라루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결과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라는 특수보직이 생겨났다. 라루사이즘 덕분에 베테랑 좌완 투수들은 1군 엔트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좌투수가 좌타자에 강한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숱한 우투수 속에서 좌타자들은 공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1루에서 더 가깝다는 장점을 내세운다. 그렇지만 주로 우투수를 상대하던 좌타자들은 가끔 좌투수를 만나면 생소하기 때문에 안타를 기록할 확률이 더 낮아지기 마련이다. 좌완 원포인트 투수는 이 점에 주목해 승부처에서 주로 좌타자 한 명만 상대하고 들어간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며 좌투수가 좌타자에 절대적 우세를 지키는 것도 옛말이 됐다. 리그에 좌투수들이 점차 늘어가면서 생소함은 더 이상 무기로 작용하지 못한다. 또한 좌타자들 역시 좌투수를 상대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최근에는 더 이상 좌투수가 좌타자에 특별히 강하지 않다.
올 시즌 리그 전체 좌투수들의 피안타율은 2할5푼3리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할5푼2리,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할5푼3리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좌투수들은 고루 안타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좌완 선발 자료를 제외한 성적은 더욱 놀랍다. 불펜 좌투수들의 피안타율은 2할6푼1리인데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할4푼1리,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할7푼5리다. 결국 불펜에서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좌투수를 내는 건 오히려 안타를 허용할 확률이 더 높은 셈이다.
 
▲ '여전히 유효하다' vs '원포인트 효과 없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올 시즌 가급적이면 좌완 원포인트를 쓰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감독은 "원포인트는 쓸 수록 투수진에 부담이 간다. 투수 엔트리 12명 가운데 선발과 마무리를 빼면 불펜투수가 6명인데 체력관리가 힘들다. 게다가 좌투수가 좌타자에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었다"라고 마운드 운용 구상을 밝혔다.
오재영은 지난해까지 넥센의 대표적인 좌완 원포인트 투수였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동안 오재영은 185경기에 출전해 128⅓이닝을 소화해 경기당 1이닝을 채 던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올 시즌은 17경기서 17⅔이닝을 던져 평균 1이닝을 넘기고 있다. 25일 목동 한화전에서 우타자에 실점을 하고도 계속 던져 2이닝을 채운 건 김 감독의 올해 달라진 마운드 운용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감독들은 여전히 원포인트 투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이 가운데 롯데 양승호 감독은 올 시즌 철저하게 투수 분업화를 지키는 편이다. 양 감독은 "선발이 6회까지 던져준다고 가정하면 좌타자 나오면 강영식이나 이명우가, 우타자 나오면 옆구리인 김성배가 나간다. 그리고 셋업맨 최대성, 마무리 김사율 순으로 간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은 김성배와 최대성이 보직을 바꿨지만, 좌타자가 나오면 어김없이 좌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명우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올 시즌 이명우는 28경기에 출전해 16⅓이닝밖에 소화하지 않았다. 지난해엔 37경기 출장, 22⅓이닝을 소화했다. 롯데 말고도 각 팀마다 좌완 원포인트 투수는 한 명씩 꼭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넥센의 시도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눈길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구는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이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형태가 변한다. 좌완 원포인트로 대변되는 '라루사이즘'이 처음 주창된 지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효용에 대한 회의가 하나 둘 자라고 있는 상황이다. 투수 교체만큼 결과론이 강조되는 것도 없지만 표본이 쌓이다 보면 의미있는 통계가 나온다. 좌투수가 좌타자에 강하다는 공식이 점점 무색해지는 요즘, 어쩌면 마운드 운용에 대한 새로운 공식이 만들어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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