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 22개의 공을 던지게 하며 못 치더라도 진을 빼겠다는 각오를 보여줬다. 그리고 상대 우완 에이스는 5회까지 97개의 공을 던지며 조기 강판했다. 두산 베어스가 3연패와 홈 8연패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윤석민(KIA) 괴롭히기’ 전략이 주효했다.
두산은 지난 29일 잠실 KIA전서 초반 난조를 딛고 6이닝 1실점 호투를 펼친 선발 이용찬의 활약에 힘입어 4-1로 승리했다. 두산은 이날 승리로 시즌 전적 20승 1무 19패(29일 현재)를 기록했고 최근 3연패 및 홈경기 8연패에서 벗어나며 1루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 앞에 오랜만에 웃었다.
이날 경기 전 김진욱 감독은 타자들에게 ‘자기 자신보다 팀을 위한 야구’를 펼쳐주길 바랐다. 초구 공략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타자의 개인 성적을 올리는 데는 좀 더 수월할 가능성이 높지만 상대 투수를 오히려 더욱 쉽게 해주고 이닝이터로 만들어주는 타격을 배격하는 자세였다.

“상대를 이용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상대 투수의 진을 빼줬으면 좋겠고 누상에 주자가 있으면 수비 시프트를 감안하며 어떤 곳이 비었는지 어떻게 때려내야하는 지 생각하고 당장 자신의 개인 성적만이 아닌 다음 기회와 팀을 위한 타격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수들의 뇌리에 팀이라는 구심점이 없으면 팀이 난조에 빠졌을 때 회복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두산은 지난 26일 잠실 롯데전서 상대 선발 라이언 사도스키의 공에 성급하게 휘두르다 106구 1실점 완투승 희생양이 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원래 타격은 30% 이상의 안타 성공률만 보여도 극찬을 받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좋은 타자라도 70% 정도는 안타를 때려내지 못하게 마련. 자신이 투수 출신인 만큼 빠른 대결로 안타를 치고 나가기보다 파울커트와 선구안으로 상대 투수를 괴롭히는 타자가 얼마나 무서운 지 알고 있는 김 감독의 이야기였다.
투수를 괴롭히라는 감독의 바람에 선수들은 제대로 활약했다. 1회말 두산 1~3번 타자들은 삼자범퇴당하기는 했으나 윤석민에게 22개의 공을 던지게 하며 괴롭혔다. 4회 김현수의 좌중간 3루타 후에는 김동주가 네 개의 파울 커트 포함 총 10개의 공을 던지게 한 뒤 1타점 중전 안타를 터뜨리는 수훈을 보여줬다. 김동주의 이 적시타는 이날 경기 결승타였다.
이에 앞서 김동주는 2회 첫 타석에서도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기는 했으나 8구까지 가는 대결을 펼쳤다. 동점 희생플라이의 주인공 손시헌도 3-1로 앞선 4회 2사 2,3루서 2루수 뜬공에 그치기는 했으나 7구까지 윤석민을 괴롭혔다. 결과론을 떠나 상대 투수의 공을 많이 던지게 했다는 점은 분명 팀을 위해서 좋은 과정론의 타격이었다.
두산 타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것. 2000년대 말 그들을 무릎 꿇게 하며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했던 SK 와이번스에서는 개인 성적보다 팀 승리에 집중하던 선수들이 대다수였다. 대체로 SK 선수들은 개인 성적보다 팀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이기는 플레이를 먼저 중시했고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선수들의 연봉도 점차 올라갔다. 그 당시 두산에서는 좋은 개인성적을 올리고도 팀이 최대 준우승에 그치는 바람에 연봉협상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선수들이 많았다.
당장의 개인 성적보다 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걸맞는 플레이가 이어질 때 팀 승리 누적과 함께 정상의 자리에 가까워지고 선수들은 따뜻한 스토브리그를 보낼 수 있다. ‘팀을 위한 야구’는 결국 선수들 본인을 위한 가장 궁극적인 야구임을 되새겨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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