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넘어갔구나 싶은 타구였다. 3년 전 한국시리즈 끝내기포의 기억이 떠올랐던지 타자주자 또한 손을 번쩍 들며 유유히 다이아몬드를 돌 채비를 갖췄으나 공은 담장을 넘지 못했고 머쓱해진 주인공은 1루에 서야 했다. KIA 타이거즈 우타 거포 나지완(27)의 9회초 2아웃 추격 적시타는 아쉽게도 탄식으로 끝났고 실점을 기록한 두산 베어스 마무리 스캇 프록터(35)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대신 경기 후 ‘Stupid'를 반복했다.
지난 30일 잠실구장서 벌어진 두산 베어스전 9회초 2사 1,3루. 상대 선발 김승회에게 7회까지 3안타 무득점으로 묶이던 KIA는 9회초 추격의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용규의 볼넷과 최희섭의 1타점 중전안타로 간신히 만회점을 뽑은 KIA는 안치홍이 좌전안타를 때려내며 1,3루로 절호의 찬스를 만들었다.
타석에 선 나지완은 상대 마무리 스캇 프록터의 초구를 그대로 당겼다. 마침 직구가 치기 좋은 코스로 몰렸고 나지완은 그대로 이를 끌어당겼다. 타구는 그대로 좌측 담장을 향해 쭉쭉 뻗어나갔다. 야구장 중앙에서 봤을 때도 타구가 그린 궤적은 ‘넘어갔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간 나지완은 양 손을 번쩍 들며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타구가 넘어갔다면 경기 끝까지 끌려가던 KIA가 한 방으로 4-4 동점을 만드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3경기 도합 8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침묵했던 나지완 개인 입장에서도 호쾌한 손맛을 느낀 만큼 환호성이 나올 법 했다. 넘어갔다면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경기였다.

그러나 나지완의 타구는 약간의 차이를 두고 담장 맞고 떨어지는 안타가 되었다. 세리머니를 준비하려고 느릿느릿 뛰던 나지완은 황급히 1루 근처에서 스피드를 냈으나 결국 1루로 귀루해야 했다. 담장을 맞고 나온 타구를 자연스럽게 송구까지 이어간 좌익수 김현수의 펜스 플레이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이다. 결국 KIA는 2사 1,3루에서 박기남의 유격수 땅볼로 경기를 패하고 말았다.
만약이라는 가정이지만 나지완이 세리머니 대신 빠르게 뛰었더라면 어땠을까. 2사 2,3루서 1루를 비워두고 상대 마무리 프록터를 압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워낙 최근 부진의 폭이 컸던 나지완의 실수를 무조건적으로 탓할 수는 없다. 어쨌든 나지완이 끌려가던 경기에서 다음 경기 분위기를 높일 수 있는 추격타를 때려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패했으나 나지완의 다음 경기 활약을 내심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경기를 승리로 끝마쳤으나 추격점을 허용한 프록터는 어땠을까. 프록터는 덕아웃으로 들어오며 ‘stupid'를 연발했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투구를 펼친 데 대한 자책감과 짜증이 한데 섞인 어조였다. 지난 4월 29일 잠실 KIA전서도 프록터는 수비 도움에 힘입어 불안한 세이브를 올린 뒤 “이건 아니다”라며 진중하게 자신의 투구를 책망했던 바 있다. 그 때보다 프록터의 표정에는 짜증이 훨씬 많이 섞였다.
라커룸으로 향하는 프록터에게 괜찮은지 묻자 그는 씩 웃었다. “내가 바보같이 던졌으나 일단 지난 일이니 되돌릴 수 없다. 다시는 이런 경기를 보여주지 않겠다”라며 악수한 손에 힘을 꽉 쥔 프록터. 마음같지 않은 투구로 고역을 치르기는 했으나 프록터는 지난 이틀 동안 최고 155km의 광속구를 던지며 뉴욕 양키스 필승 계투 시절의 구위를 서서히 회복 중이다.
호쾌한 장타를 때려내고도 실수로 인해 추가 진루에 실패했던 나지완과 간신히 거둔 팀 승리 후 미간을 찌푸리며 라커룸으로 향한 프록터. 그들이 다시 승부처에서 대결한다면 그 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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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