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머리 높이까지 솟았던 공이 무지개처럼 궤적을 그리며 스트라이크존을 훑고 포수 미트에 파찰음을 일으킨다. 직구 구위도 구위였으나 손 쓸 방도가 없는 명품커브가 오랜만에 잠실벌을 수놓았다. 만 3년 반에 가까운 실전 공백기를 거쳐 돌아온 김진우(29, KIA 타이거즈)가 감격적인 승리를 따냈다.
김진우는 31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로 나서 5이닝 동안 최고 148km의 직구와 129km에 이르는 파워커브를 앞세워 5피안타(탈삼진 3개, 사사구 2개) 2실점으로 시즌 3승(3패)째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김진우는 지난 2005년 9월 8일 LG전부터 이어졌던 잠실구장 3연패에서 벗어난 동시에 지난 2003년 7월 13일 LG전 5피안타 완봉승 이후 무려 3245일 만에 잠실구장 승리를 거뒀다.
2007시즌 중반 돌연 팀을 이탈한 뒤 만 3년 반 가량 실전 공백을 가졌던 김진우는 잠실벌에서 비로소 웃었다. 광주 진흥고 시절 초고교급 투수로 각광받으며 2002년 당시 신인 최고 계약금인 7억원을 받으며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김진우는 데뷔 첫 해 12승을 거두며 투수진 주축으로 떠오른 동시에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기쁨까지 누렸다. 2006년까지 크고 작은 부상을 겪기는 했으나 그래도 등판하면 제 몫을 해주던 김진우는 KIA 마운드 현재이자 미래였다.

그러나 김진우의 선수생활은 2007시즌 도중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며 엄청난 자괴감에 빠진 끝에 팀을 이탈, 임의탈퇴까지 공시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야구를 하고 싶다는 열망 섞인 이야기와 달리 복귀와 갑작스러운 잠적 등도 이어져 김진우는 만 3년 반 동안 사실상 은퇴 선수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2010년 말 극적으로 팀에 합류한 김진우. 지난해 10경기 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5.19로 조심스럽게 1군 마운드를 밟기도 했던 김진우는 올해 전지훈련 도중 어깨 통증으로 중도 귀국하는 등 그리 순탄하지 않은 시즌 준비기를 거쳤다. 아직 완벽한 투수는 아닌 만큼 선동렬 감독 또한 김진우가 5이닝 75구를 던진 뒤 신인 박지훈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긴 공백기를 거쳤고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닌 김진우지만 그가 명품 투수였음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커브였다. 총 75구 중 직구 36개(스트라이크 23개, 볼 13개), 커브 23개(스트라이크 15개, 볼 8개), 슬라이더 10개(스트라이크 7개, 볼 3개), 체인지업 1개(볼), 투심 패스트볼 5개(스트라이크 4개, 볼 1개)를 섞어던진 김진우는 117~129km의 커브를 자유롭게 던졌다.
일찍이 김진우의 커브는 단순히 완급조절을 위해 보여주는 공이 아니었다. 120km대 후반으로 웬만한 투수들의 슬라이더 버금가는 구속의 '김진우표 파워커브'는 두산 타자들을 움찔하게 했다. 특히 왼손 타자 몸쪽 결정구로 떨어뜨린 커브는 꽉 찬 코스에 제구되며 '역시 김진우'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경기 전 김진우는 대형 사인볼 사인에 선수단 앞으로 선물로 온 커피를 손수 나르는 등 여타 선발투수들과 달리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대개 선발 투수들은 경기 전 기를 뺏긴다는 징크스 때문에 되도록 많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김진우는 "괜찮습니다"라며 순박한 웃음으로 바삐 움직였다. "등판 후 다음날 어깨가 뻐근한 느낌마저도 기분 좋다"라며 마운드에 설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기뻐한 김진우는 이제 새로운 야구인생을 향해 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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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