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 미안해 할 까봐 뭐라고 말도 못 하겠어요".
31일 경기를 앞둔 사직구장. 전날 연장 패배 탓인지 LG 김기태(43) 감독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특히 김무관 타격코치가 토스해 주는 묵묵이 치고 있는 서동욱을 바라보면서 "미안해 할 까봐 (어제 만루 장면에 대해) 뭐라고 말도 못 하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동욱은 전날 2-2로 맞선 연장 10회 2사 만루서 타석에 들어섰다. LG는 최동수의 안타와 1루수 조성환의 실책, 그리고 정성훈의 볼넷으로 만루를 채운 상태였다. 마운드의 김사율은 실책과 볼넷이 겹치며 제구가 흔들리고 있던 상황. 여기서 서동욱은 초구에 과감한 기습번트를 감행했으나 타구는 허무하게 1루수 조성환 앞에 떴고 결국 내야플라이로 잡히고 말았다.

만약 타격을 했어도 점수가 난 다는 보장은 없지만 2사 상황에서 초구 기습번트로 허무하게 아웃됐기에 LG 더그아웃에는 탄식이 가득했다. 결국 절호의 기회를 놓친 LG는 연장 11회 강민호에 끝내기 안타를 헌납하며 경기를 내줬다.
LG 쪽에선 그 순간 탄식이 나왔다면, 롯데는 안도의 한 숨이 나왔으리라. 롯데 양승호(52) 감독은 "솔직한 심정으로 서동욱에게 고마웠다"면서 "김사율이 흔들리고 있던 상황이다. 투수는 안타에 에러, 그리고 볼넷까지 연달아 나오면 완전히 멘탈이 흔들리게 돼 있다. 서동욱이 투수를 도와준 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동욱 만루 번트사건'의 조연 쯤 되는 조성환은 어땠을까. 사실 연장 10회 LG의 만루는 조성환의 실책이 나오며 이뤄진 것이었고 서동욱의 번트 타구를 처리한 것도 조성환이었다. "야구는 철저하게 결과론적인 스포츠다. 만약 거기서 절묘하게 (서)동욱이 타구가 안타가 됐으면 영웅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한 조성환은 "잘 해보려다 그렇게 된 것이니 동욱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조언도 잊지 않았다.
보기엔 조성환이 쉽게 잡은 타구였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다. 조성환은 "거기서 번트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그런데 동욱이가 갑자기 배트를 세워서 내미는 게 보이더라. 그래서 '어 이상하다' 싶어서 안으로 들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는 "다행히 쉬운 플라이로 떠서 온다 싶었는데 갑자기 라이트에 숨더라. '이러다 내 머리 위로 넘어가면 큰일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긴장하며 공을 기다리니 그제야 다시 내 눈에 들어왔다"라고 설명했다.
서동욱이 전날 만루의 아픈 기억을 잊기도 전에 다시 만루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1-1로 맞선 9회 1사 만루였다. 동점인 것과 마지막 이닝인 것은 같았지만 아웃카운트는 달랐다. 서동욱이 자신있게 날린 타구는 전진수비 중이던 박준서의 정면으로 향했다. 일단 3루주자가 홈에서 포스아웃 된 뒤 강민호의 송구는 1루로 향했다. 서동욱은 죽을 힘을 다 해 뛰었고 강민호의 송구가 좋지 않아 1루에선 살았다. 자칫 더블아웃으로 기회를 날릴 뻔한 순간이었다. 결국 대타 윤요섭이 결승 2타점 2루타를 작렬시켜 서동욱이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덜어줬다.
cleanupp@osen.co.kr
부산=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