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투수에게 다가온 최악의 불운이다.
한화 '괴물 에이스' 류현진(25)에게 2012년은 지독할 만큼 운이 따르지 않고 있다. 류현진은 지난달 31일 대전 삼성전에서 올 시즌 개인 최다 탈삼진 타이 13개를 잡으며 7이닝 5피안타 2볼넷 1사구 2실점으로 역투했다. 시즌 최고 153km 강속구 뿌렸지만 팀 타선은 2점을 얻는 데 그쳤다. 결국 승리는 또 류현진을 외면했다.
▲ 데뷔 후 가장 느린 승수 페이스

5월까지 시즌 첫 10경기 2승3패. 예년과 비교해보면 류현진의 승수쌓기 페이스가 얼마나 느린지 알 수 있다.5월까지 성적을 기준으로 할 때 2006년 7승1패(2.60) 2007년 6승3패(3.58) 2008년5승3패(3.86) 2009년 6승2패(4.04) 2010년 7승2패(1.85) 2011년 4승5패(3.91). 지난해 4승이 최소 승수였지만 올해는 그보다 2승 적다. 평균자책점만 놓고 보면 2010년 다음으로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지독하리만큼 승운이 따르지 않고 있다. 데뷔 후 처음이라 류현진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올해 류현진은 누가 뭐래도 최고 투수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70이닝을 던지며 최다 탈삼진 93개를 잡고 있다. 선발등판 평균 투구이닝이 유일하게 7이닝이 넘는 이닝이터로 탈삼진 2위와는 무려 44개의 격차로 압도적인 1위다. 평균자책점도 전체 3위. 다승(6승)·평균자책점(2.42) 2개 부문 1위의 벤자민 주키치(LG)와 함께 2012년 리그 최고 투수 지분을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승보다 패가 많은 2승3패. 10경기 중 퀄리티 스타트가 8차례이고 그 중 7경기는 7이닝 이상 2자책점 이하로 막아낸 특급 피칭이었다. 하지만 3득점 1경기, 2득점 2경기, 1득점 3경기, 무득점 1경기로 3득점 이하 지원이 7경기에 달한다. 류현진에게 2점은 패배 또는 승패 없는 노디시전을 의미했다. 류현진은 올해 노디시전 5경기에서 경기당 7.6이닝을 던지며 실점을 7점만 허용했다. 평균자책점 1.66인데도 승리를 못했다.
팀 타선이 터지지 않은 건 이제 두 말할 것도 없고, 불펜에서 승리를 날린 것도 한 번 있었다. 류현진이 마운드에 있는 70이닝 동안 한화 수비진은 공식 기록된 실책 6개 외에도 기록되지 않은 실책성 플레이도 존재했다. 그런데도 류현진은 무너지지 않고 최소 5이닝 이상 던지는 기본 역할을 잊지 않는다.
▲ 역대 가장 불운한 투수 되나
역대를 통틀어도 류현진만큼 불운한 투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역대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15패 이상 당한 투수는 1982년 롯데 노상수(14승19패·2.94)를 비롯해 1986년 빙그레 이상군(12승17패·2.63) 1983년 삼미 장명부(30승16패·2.34) 1983년 롯데 최동원(9승16패·2.89) 2006년 두산 다니엘 리오스(12승16패·2.90)까지 5명이 있다. 장명부는 역대 한 시즌 최다이닝 최다승 투수로 예외라 할 만하다. 가장 최근에는 2007년 KIA 윤석민이 평균자책점 3.78에도 7승18패를 당해 불운의 투수가 됐다.
류현진이 올해 1위를 달리고 있는 투구이닝과 탈삼진을 통해서도 류현진의 불운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 가능하다. 역대 한 시즌 최다이닝 투수의 최소승수는 바로 지난해 LG 주키치가 기록한 10승. 그 다음으로 2008년 LG 봉중근이 거둔 11승이다. 역대 탈삼진 1위 중 최소 승수는 1999년 현대 김수경으로 역시 10승이었다. 이닝-탈삼진 모두 1위를 휩쓴 경우는 모두 9차례 있었는데 이들의 평균 승수는 18.4승. 이 중 최소 승수는 2003년 LG 이승호로 11승이다. 그 다음으로 1996·1994년 각각 13승과 14승을 거둔 한화 정민철이다.
하지만 올해 류현진은 상상을 초월하는 심각한 불운으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패수가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노디시전 경기로 좀처럼 승리가 되지 못하는 게 많다. 올해 류현진은 2010년에 이어 데뷔 후 가장 좋은 페이스를 자랑하고 있다. 탈삼진은 개인을 넘어 역대 최고 페이스이며 이닝-평균자책점도 리그 최고 수준이다. 승리만 없을 뿐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펼치고 있다.
31일 삼성전에서 승리를 얻지 못했지만 류현진은 오히려 미소를 지어보였다. 경기 후 언제나처럼 아버지를 만나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비록 승리는 얻지 못했지만, 류현진은 승리 빼고는 투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미 승패를 초월, 자기자신과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진정한 에이스는 누구를 탓을 하지 않는다. 류현진은 지금 고독한 에이스의 길을 걷고 있다.
waw@osen.co.kr

대전=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