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걸이 홈런에 모른 척', 롯데 새로운 전통?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6.03 11: 32

"처음에는 아무도 안 나와 있길래 당황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지난달 7일(한국시간) LA 에인절스 알버트 푸홀스가 뒤늦은 시즌 첫 홈런을 신고했을 때의 일이다. 천문학적 액수를 받고 팀을 옮긴 푸홀스는 좀처럼 홈런이 나오지 않으며 마음 고생이 심했고, 그랬던 그를 위해 팀 동료들은 특별한 축하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바로 더그아웃을 텅 비우는 것. 홈런을 친 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푸홀스는 팀원들이 보이지 않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선 간혹 큰 경기에서 결정적인 홈런이 나오면 이런 식으로 축하해 주기도 한다. 이를 알고 있던 푸홀스는 잠시 후 선수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장면이 요즘 롯데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롯데는 지난 1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넥센과의 경기에서 7-3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날 경기에서 손아섭은 4회 김병현을 두들겨 비거리 130m짜리 시즌 1호 홈런을 터트렸다. 지난해 15개의 홈런을 쳤던 손아섭은 좀처럼 장타가 터지지 않아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이 한 방으로 모두 씻어내렸다.
손아섭은 베이스를 돌고 난 뒤 의기양양하게 롯데 측 더그아웃으로 돌아왔지만 양승호 감독, 권두조 수석코치만 하이파이브를 해 줄뿐 팀 동료들은 그를 외면했다. 보통 선수들은 홈런이 나오면 더그아웃 바깥으로 나와 줄줄이 서서 홈런을 축하해 주기 마련. 줄곧 모른 척하고 있던 롯데 선수들은 손아섭이 더그아웃 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표정을 바꿔 격렬한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선수들의 깜짝 세리머니에 손아섭의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2일 경기를 앞두고 손아섭은 "깜짝 인사에 정말 많이 감동 받았다"면서 "팀 동료들이 나를 위해 이런 것까지 준비했다는 것에 가슴이 찡해졌다"고 거듭 말했다. 처음 손아섭은 선수들이 아무도 안 나와있어 당황했다고 한다. 그때 메이저리그에선 가끔 이런 식으로 축하 인사를 하는 게 떠올랐고, 역시나 동료들은 곧 손아섭에 모두 달려들어 축하해줬다.
 
그리고 2일 경기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이번엔 또 다른 시즌 첫 홈런을 신고한 김주찬이 주인공이었다. 김주찬은 4회 넥센 선발 김영민의 몸쪽 높은 142km 직구를 잡아당겨 좌측 펜스를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역시나 모른 척 하고 있던 동료들은 김주찬이 더그아웃 안으로 들어오자 너도나도 축하 해줬다. 바로 전날 손아섭이 이미 한 번 당했기에 김주찬은 당황한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중요한 건 모든 홈런에 대해 '특별 이벤트'가 벌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 김주찬의 홈런에 앞서 1회 강민호는 만루홈런을 쳤지만 이때는 감독과 코치, 선수들 모두 더그아웃 밖으로 나와 영접했다. 스리런 홈런을 터트린 박종윤 역시 마찬가지다. 강민호는 시즌 6번째, 박종윤은 시즌 4번째 홈런을 기록했기에 '특별 취급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럼 이건 누구의 아이디어 였을까. 바로 홍성흔이다. 홍성흔은 지난 주 두산과의 주말 3연전 도중 '앞으로 첫 홈런을 친 선수가 더그아웃에 돌아오면 모른척 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한 동안 혜택을 받는 선수가 안 나오다 1일과 2일 연이틀 마수걸이 홈런을 신고한 선수들이 등장했다. "롯데에도 이런 전통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에게 제안했다. 재미있게 따라 줘서 고맙다"는 게 홍성흔의 설명이다.
홍성흔은 지난달 30일 경기 도중 등에 담이 와 최근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더그아웃 뒤에서 이런 식으로 롯데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 있다. 이런 작은 변화가 팬들에겐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김기태 감독의 검지 손가락 세리머니, 이승엽의 엄지 홈런 세리머니, 그리고 롯데의 '시즌 첫 홈런 모른 척하기' 등 야구장에서 개성있는 모습이 더 많이 나온다면 우리 프로야구의 컨텐츠도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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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민경훈 기자,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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