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 속 남자들은 왜 다 '찌질' 할까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2.06.04 11: 56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어느 정도 일관적인 캐릭터는 '찌질한 남자들'이다. '찌질함'이라 부르는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홍상수 감독 속 남자들의 찌질함은 '여자와의 하룻밤'을 위해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모습에서 생겨난다.
제 6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신작 '다른 나라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홍상수 감독의 열세 번째 장편 영화인 '다른 나라에서'는 변산반도 부안의 작은 어촌 마을 모항으로 여름 휴가를 온 세 명의 안느(이자벨 위페르)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인형처럼 예쁜 외국 여자에 판타지를 갖고 있는 한국 남자들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극중 종수(권해효)는 임신한 아내가 옆에 있음에도 시시탐탐 안느를 유혹하기 위해 난리법석을 친다. 안느에게 "키스해달라"고 조르는 종수의 행동은 몸부림에 가깝다. 그런가하면 몸짱 안전요원 유준상은 순진한 듯 귀엽게 '은근한 작업'을 벌인다. 칸 공식기자회견에서 한 독일 매체는 유준상에게 "당신의 캐릭터는 한국 남자의 전형을 그리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고, 유준상은 유머러스하게 "그렇지 않다. 안전요원만 순수하다"라고 답변하기도.

홍상수 감독이 그리는 남자의 찌질함은 역사를 갖고 있다. 배우 송선미 역시 홍상수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들이 '찌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해변의 연인'에 이어 '북촌방향'에도 출연한 송선미는 지난 해 '북촌방향'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예전 감독님 영화를 대할 때는 관객 입장에서 여자가 존중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라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 드는 생각은, 여자가 그렇다기 보다는 남자가 찌질하다는 느낌이다. 극중 남자주인공 준상은 여자한테 '넌 정말 예뻐' 이런말을 한다. 여자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진심으로 날 사랑해서 한다'라고 믿는다. 나도 믿고 내 친구들도 그렇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가 정말 멍청했구나'란 생각을 한번쯤 하게된 것 같다"라고 솔직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극장전'에서 동수(김상중)는 여배우 영실(엄지원)을 '어떻게 해보기 위해' 하루종일 그녀의 뒤꽁무늬를 졸졸 쫓아다녔고 '오 !수정'에서는 남자주인공들, 심지어 수정의 친오빠까지도 수정을 갖기 위해 온갖 찌질함을 다 보였다. '강원도의 힘'의 상권(백종학)은 오랜만에 재회한 불륜 관계의 지숙(오윤홍)을 원하는 남자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멀쩡한 두 남자는 그들이 추억하는 한 여자를두고 오직 단둘이 있을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린다. 강력한 일상의 힘이 멋진 비주얼의 배우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집어삼킨다. 오직 욕망과 본능에서 자유롭지 못한 '찌질한 그 사람들'은 그렇게 관객들에게 속내를 들키고 만다.
송선미 같은 관객 반응이 홍상수 감독이 계획한 목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홍상수 영화에 불편함을 느끼던 여성 관객들이 더욱 여유를 갖고 즐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한국남자의 이중성을 조롱하는 것일까, 영화 제목처럼 여자는 남자의 미래이고, 남자의 모든 것임을 설명하는 것일까. 어쨌든 엄지원이 그렇고, 문소리가 그렇고, 안느가 그렇듯이 홍상수 월드 속 찌질한 남자들을 상대하며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것은 여자 주인공들이다. 페미니스트들의 공격과 비판을 받기도 했던 홍상수 감독은 혹시 가장 반어적인 페미니스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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