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화 감독 사칭 사건이 남긴 씁쓸한 뒷맛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2.06.05 09: 19

팬심(心)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지난해 부산의 역적에서 영웅이 된 롯데 양승호 감독은 "야구는 무조건 성적이다. 성적이 안 나면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며 '잠복기론'을 펼쳤다. 지난해 '야구의 왕'이라는 의미의 '야왕'으로 추앙받은 한화 한대화(52) 감독도 최근 네티즌 사칭글로 곤욕을 치렀다. 
한화 구단은 지난 4일 한대화 감독을 사칭해 인터넷에서 물의를 빚은 네티즌이 이날 오전 구단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와 "한대화 감독님께 너무 죄송한 죄를 지었다. 한화팬으로서 요즘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엉겁결에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며 자신의 잘못을 빌고, 실수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한화 갤러리에는 지난달 27일 '안녕하세요, 한화 이글스 감독 한대화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한대화 감독을 사칭한 이 네티즌은 '이제 저의 야구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닥치고 지켜봐 주십시오'라며 욕설과 비아냥 섞은 글을 남겼고, 이게 급속도로 퍼지며 한대화 감독도 가족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을 사칭한 네티즌의 황당무개하지만 악의가 느껴진 글에 한 감독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러나 팬이 한화를 사랑한 나머지 그런 실수를 했고, 깊이 뉘우친다니 다행이다. 앞으로 인터넷상에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며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이 사이트 회원들은 지난해 9월25일 직접 경기장을 찾아 선수단 전체에 간식거리를 제공하고 한 감독과 감독실에서 직접 환담을 나눈 이들이었다. '야왕 신드롬' 패러디물을 담은 책을 만들었고, 한 감독의 이름이 적힌 빙그레 유니폼까지 선물했다. 현역 시절에 그토록 입고 싶었지만 입을 수 없었던 빙그레 줄무늬 유니폼을 한 감독은 지금도 집에 따로 고이 보관해두고 있다. 
그랬던 팬들이 1년도 되지 않아 비난 화살을 퍼붓고 있다. 물론 비난은 팬들의 고유 권한이다. 시즌 개막 후 한 번도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답답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팀에 비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감독을 겨냥한 사칭글은 최하위 팀의 수장을 뒤흔드는 행태밖에 되지 않는다. 해석하기에 따라 의도적이고 악의적이라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도 아쉽다. 사칭글은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 팀의 수장을 사칭했으니 강경하게 대응할 만하다. 그러나 이 글은 누가 보더라도 한 감독이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익명성' 가득한 사이트였다. 그런데 너무 드러내 놓고 일을 처리했다. 굳이 공개하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처리해도 될 일을 만천하에 알렸다. 최하위로 떨어져있는데 야구 외적으로도 희한한 일에 엮이는 팀이 된 것이다. 
공개적인 강경 대응으로 팬들에게는 인터넷상 기본 예절에 대한 경각심은 일깨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수준 이하 네티즌에 드러내 놓고 대응한 모양새도 영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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