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영화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부터 전쟁 영화 ‘글래디에이터’, 여성 로드 무비 ‘델마와 루이스’까지 다양한 장르 영화들을 만들어 수많은 히트작을 배출해 낸 할리우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12년 SF영화 ‘프로메테우스’로 돌아왔다.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처음 마주한 관객들은 영화의 스펙에 압도되기 쉽다. 1982년 ‘블레이드 러너’ 이후 30년 만에 SF로의 귀환을 알리는 거장 리들리 스콧의 작품일 뿐 아니라 진짜 우주를 거대한 세트로 완벽 재현한 웅장한 스케일, 미래의 최첨단 과학기술을 스크린 속에 펼쳐 놓은 볼거리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영화는 미래 세상의 최첨단 과학기술을 나열하며 SF 영화로서의 사명을 다한다. 어떤 치료나 외과 수술도 가능한 최첨단 의료 기기 ‘로보틱 메디컬 포드’, 공중을 떠다니며 주위의 구조와 지리를 파악해 우주선으로 전송, 3D입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게 해주는 ‘매핑볼’ 등은 미래 기술의 집약체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발명품은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안드로이드 로봇’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감정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며 인간을 도와준다.

‘프로메테우스’는 SF적인 상상력을 총동원한 발명품들을 등장시키며 다양한 볼거리로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다가도 이 모든 것의 이면에는 인간의 욕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프로메테우스호’는 개인 소유의 우주선이다. 이 거대한 우주선의 뒤에는 1조 달러가 넘는 막대한 자본을 투자, 탐사대원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웨이랜드 산업의 대표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가 있다. 혼자서는 거동도 힘들만큼 노쇠한 그는 인류의 기원을 찾아 영생을 얻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를 지녔다. 그는 조물주를 만나 생명의 비밀을 알아내 코앞으로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자신의 힘으로 걷어내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한다.
그와 반대로 영화 속 과학자들은 인류 기원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목숨을 건 탐사를 이어간다. 영생에 대한 꿈을 꿀 만큼 늙지 않은 젊고 패기넘치는 과학자들은 자구상의 모든 역사와 문명의 개념조차 전복할 진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다. 결국 이 지독한 호기심은 과학자들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
실제 창조주를 직접 대면에 인류의 기원에 대해 묻기 위해 ‘프로메테우스호’에 승선한 과학자들은 탐사도중 외계인이 우리와 똑같은 DNA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낸다. 즉 인간이 외계인의 복제품이라는 증거, 외계인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증거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신앙심이 강한 과학자 엘리자베스(누미 라파스)는 이같은 사실을 알아내고도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간다. 실용주의 과학자 찰리(로건 마샬 그린)는 그의 연인 엘리자베스에게 인류의 기원이 밝혀졌는데 왜 아직도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대답한다. “그럼 그 외계인은 누가 만들었는데?”
외계인이 인류의 기원일지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가설을 펼치는 SF영화 ‘프로메테우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두 가지 본능, 영생에의 욕망과 인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을 그리는데 충실한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데이빗 역 마이클 패스벤더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에이리언’은 SF 장르 영화의 기준점과도 같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영화에 지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프로메테우스’는 볼거리만을 나열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권선징악 구조로 인간이 외계인을 물리치는 내용의 평범한 SF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진화만이 우리의 근원을 밝혀주는 유일한 설명인가?’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을 괴롭혀 온 원초적인 질문을 스크린으로 재현해냈다. 물론 영화는 그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과학의 이면에 감추어진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인간이 과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자 하는 원초적 본능을 탐구하는데 충실하다. 이것이 아마도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가 범작에 머물지 않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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