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일 수 있던 경기. 그러나 그는 자신을 떠나 보내려는 팀에 태업성 투구가 아닌 전력투구로 선두 수성을 이끌었다. 한국에서의 세 시즌 반 동안 좋은 추억은 물론 아쉬운 장면도 함께 남겼던 아킬리노 로페즈(37)가 한국 무대 마지막일 수도 있는 등판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로페즈는 5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84개의 공을 던지며 7피안타(탈삼진 3개, 사사구 1개) 3실점으로 7-3 경기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선두 SK는 이날 승리로 시즌 전적 25승 1무 19패(5일 현재)로 선두 자리를 지켰다. 이날 로페즈는 최고 146km의 직구에 역회전되는 공이 나쁘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으나 제구가 다소 높은 편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SK는 최근 새로운 외국인 투수가 될 토론토-밀워키 출신 데이브 부시와 계약 합의를 맺었다. 이는 얼마 전까지 오른 어깨 통증으로 정상적인 투구를 하지 못했던 로페즈와 바통터치를 위한 것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로페즈와 SK의 이별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로페즈가 뒤늦게나마 선발로 제 몫을 한 것이다.

2009년 KIA의 외국인 투수로 한국 땅을 밟은 로페즈는 세 시즌 반 동안 통산 32승을 올렸다. 2009시즌에는 14승으로 공동 다승왕이 되는 동시에 그해 SK와의 한국시리즈서 2승을 따내는 동시에 7차전서 계투로까지 나서는 투혼을 펼쳤다. 7차전 끝내기포의 주인공 나지완이 최우수선수가 되었으나 시리즈 내용으로 보면 로페즈가 KIA의 우승을 이끌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로페즈는 이듬해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결정적인 순간 불운 속 4승(10패)에 그치고 말았다. 이 때 로페즈는 덕아웃에서 분에 못 이겨 의자를 집어던지거나 쓰레기통을 걷어차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웬만해서는 평소 시끄럽지 않은 편인 로페즈가 '의자왕'이라는 안 좋은 별명을 얻기도 했던 2010년이었다.
2010시즌 후 구단과 '더 이상 팀워크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받고 재계약한 로페즈. 지난 시즌 로페즈는 전반기까지 에이스로서 쾌투를 펼치다 중후반 팔꿈치 통증 등으로 인해 자기 공을 던지지 못하며 11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KIA는 많은 나이와 부상 전력으로 인해 로페즈의 이름을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자신의 활용가치를 높게 평가한 SK의 선택을 받아 네 시즌 째 한국에서 뛴 로페즈. 그러나 이번에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두 번의 갑작스러운 오른 어깨 통증으로 인해 결국 로페즈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비운의 외국인 투수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해가 될지 모르는 로페즈의 올 시즌 성적은 3승 2패 평균자책점 3.86(5일 현재)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 로페즈는 덕아웃에서 불만을 표출하며 격분할 지 언정 마운드에서는 자신이 할 일을 충실히 하고자 노력했던 투수였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등판서도 로페즈는 태업 대신 선발로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충실히 해냈다. 어깨 부상 두 차례를 겪은 자신을 중도에 떠나보낼 예정인 SK. 그러나 로페즈는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팀의 두산전 4연패를 끊는 자신의 한국 통산 32승 째를 거뒀다.
farinelli@osen.co.kr
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