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사람들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추상적으로 떠올려가며 많은 답을 쏟아낸다.
‘사랑, 믿음, 평화, 신뢰, 자유, 물, 식량 등등….’
그러나 인간이 생존을 위해 기본적으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궁극적이고도 원초적인 것으로 생각을 좁히면 답은 아주 간단할 수 있다. 당장 없으면 사람이 채 몇 분도 버티지 못할 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대기중의 산소, 즉 공기다.

그렇지만 그토록 대단히 소중한 공기의 존재를 우리는 거의 잊고 산다. 형체도 없이 냄새도 없이 늘 우리 곁을 감싸고 있기에 당연한 듯, 공기에 대한 특별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야구는 사람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야구에도 있었다. 원초적 질문이. 언제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누가 묻는다. 그런데 답이 궁색해진다. 너무 당연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터라 기본임에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야구팬의 질문이 있었다. 땅볼을 친 타자주자가 1루를 밟는 타이밍과 야수의 송구를 1루수가 잡는 타이밍이 동시일 경우, 세이프인지 아니면 아웃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작은 내기를 걸고 규칙집까지 뒤져봤는데 아무리 들춰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야구규칙 (e)항에는 주자(타자주자 포함)가 아웃처리 되는 상황에 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들어있다.
‘진루할 의무가 생긴 주자가 다음 루에 닿기 전에 수비수가 그 주자나 또는 루에 태그하였을 경우. 해당주자는 아웃이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로, 이 조항의 핵심은 ‘주자가 루에 닿기 전’이라는 부분이다. 주자가 루에 도착하기 전에 공이 먼저 오면 당연히 그 주자는 아웃임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규칙집 어디를 뒤져봐도 주자와 송구가 동시에 도착했을 경우에 관한 설명은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역으로 따져 주자가 루에 닿기 전에는 아웃이라는 것을 전제로 시점상 닿기 전만 아니라면(동시 또는 닿은 후) 아웃이 아닌 것으로 미루어 짐작,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경기장에서 직접 판정을 내리는 심판원의 생각은 어떠할까? 일단 주자와 공이 동시에 도착했다는 것을 조건으로 원칙상은 세이프로 봐야 한다라는 답을 내렸다. 주자가 루에 닿기 전에 송구가 먼저 도착해야 아웃임으로 송구가 먼저 도착하지 못했다면 주자를 아웃으로 인정하기에는 필요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단서가 달려있다. 타이밍상 ‘동시(同時)’라는 것을 전제로 판정을 내리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주자가 공보다 빨랐건, 아니면 공이 주자보다 빨랐건 둘 중의 어느 하나가 먼저 도착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세이프와 아웃에 관한 판정이 갈리는 것이지, 동시라는 이유를 앞세우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주자의 발과 송구 중에서 어느 것이 1루에 먼저 도착했는지를 초고속 카메라를 통해 끝까지 가려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최근 급속한 중계기술의 발달로 육안으로 판단이 어려운 판정을 여러 각도에서 잡아낸 느린 재생화면 덕분(?)에 제대로 된 판정인지 아니면 오심인지의 여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 따라서 판정을 내리는 판정관의 우선적인 마음자세는 동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경기 중 주자와 공의 엇비슷한 타이밍은 대체로 아웃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자칫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인데 동시라서 아웃으로 판정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부터의 오래된 경험상 비슷한 타이밍은 주자의 발보다 송구가 먼저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학습효과 때문으로 추리해볼 수 있다.
주자는 땅에 놓여져 있는 1루를 밟아야 하지만 야수의 송구는 땅바닥의 1루가 아닌 몸을 뻗어 송구를 잡는 1루수 미트 도착시간이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슷한 타이밍이라면 주자의 발보다 송구의 도착점이 시점상 다소 유리한 것이 사실이며, 이러한 정황이 판정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