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인식 바꾼' 정우람, "선발 욕심? 전혀 없다"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2.06.08 06: 26

"정말 팀에서 필요하면 모르겠지만…."
한 때 그도 선발 투수가 목표였다. 선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 그 스스로가 목표 자체로 거듭나며 신화로 변모했다. SK 마무리 정우람(27)이 불펜 투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꿔 놓은 주인공이 됐다.
정우람은 지난 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두산과의 원정경기에 2-1로 앞선 9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역대 22번째 500경기를 돌파한 투수로 이름을 올린 순간. 무엇보다 지난 2006년 이혜천(두산)이 보유했던 최연소 기록 27세 1개월 15일을 한 달 이상 앞당긴 27세 6일만에 거둔 쾌거였다.

신기록에 걸맞게 1점차 리드 상황을 무실점으로 막은 정우람은 시즌 11번째 세이브로 500경기 출장을 자축했다. 지난 2004년 2차 2라운드(11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은 지 9년차 만에 이룬 업적이다.
정우람의 이 기록이 돋보이는 이유는 순수 불펜으로만 거둔 결과물이라는 데 있다. 전문 불펜 요원도 성공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500경기를 돌파한 투수 중 순수 불펜에 가장 가까웠던 이는 쌍방울과 삼성에서 뛰었던 김현욱(현 삼성 재활코치)이었다. 통산 519경기를 뛴 김현욱은 그 중 2경기가 선발 등판이 포함된 것이었다.
사실 정우람도 한 때 대부분의 투수가 원하는 선발이 꿈이었다. 신인시절 2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2005년 59경기(13홀드)에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주축 중간 투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6년과 2008시즌 각각 최다인 82경기(46⅔이닝), 85경기(77⅔이닝)에 등판, SK 불펜의 중심이 됐다. 2008시즌과 2011시즌 25홀드씩을 거두면서 이 부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작년 5월에는 최연소, 최소경기 100홀드 달성도 이뤘다. 현재는 역대 홀드 부문 1위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어중간한 선발이 될 바에야 현재 보직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면서도 결국에는 "언젠가는 선발 투수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털어놓았던 정우람이었다. 잠깐잠깐 힘들고 지칠 때는 선발로 가는 과정이라 여기며 인내했다. 실제 SK 코칭스태프에서도 정우람의 선발 전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우람은 차츰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불펜 투수로 최고의 길을 갈 수 있고 가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다. 현실에 대한 포기나 안주가 아니었다. 아예 "팀과 나를 위해 내가 있을 곳은 중간"이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다잡은 것이다.
정우람은 2012시즌에 앞서 2억 8000만원에 연봉 재계약했다. 구단도 정우람의 노고를 인정, 팀내 최고 연봉 투수로 내세운 것이다. 불펜 투수로만 뛰었던 정우람의 위상이 어느 정도 올랐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평소 중간 계투진에 대한 인식을 역설해왔던 정우람이 스스로 모범답안을 제시한 것이기도 했다.
정우람은 500경기 출장 후 선발 투수에 대한 욕심에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처음부터 중간에서 시작해 쌓은 기록들인 만큼 천직이라 여기겠다"고 말한 정우람은 "혹시 팀이 원한다면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만 되도록 불펜 투수로 계속 뛰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정우람은 "기록은 이어가는 데 의미가 있다. 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아닌 만큼 좋은 선배들을 롤모델로 삼아 차근차근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면서 "앞으로 더 많이 배우고 몸 관리를 잘해 계속 기록을 올려가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특히 "최근 중간 계투에 대한 중요성이 잘 부각돼 스스로도 뿌듯하다"는 그는 "기록에 연연하기보다 꾸준히 선수생활을 잘하고 싶다"고 말해 불펜 투수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 시즌 후 입대하는 정우람이 써가는 순수 불펜 투수 신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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