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연기력에 대해 어느 한 장르에 국한해 칭찬하는 것이 기분 좋은 평가일지는 모르겠으나 김선아에게 로맨틱코미디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는 일만은 다른 도리가 없다. 그녀가 가장 잘하는 것이 '로코'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롯이 '로코' 연기의 정석이며 답이다.
최근 방영 중인 MBC '아이두아이두' 속 김선아는 바로 전작인 '여인의 향기' 속 캐릭터와는 전혀 다르다. 다소 푼수 같고 해맑고 순진했던 '여인의 향기' 속 노처녀와 달리 '아이두아이두'에서의 그녀는 시크하고 화려한 골드미스다. 구두 디자이너로 최고 자리에 올랐고 그렇게 되기까지 자궁도 남자도 돌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서 신경질적이고 까칠하며 자존심만이 최대 자산이지만 연애나 결혼에는 또 숙맥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보았던 해맑고 푼수 같던 시한부 여인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깐깐하고 도도한 여주인공만이 브라운관을 누빈다.
두 작품이 전혀 다른 얘기를 다루고 있고 따라서 그녀의 캐릭터도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근본적으로 두 작품 모두 로코 장르에 가깝다고 할 때, 그녀는 결국 한 장르 안에서 무한 변신이 가능한 전천후 배우다. '내 이름은 김삼순'과 '여인의 향기', '시티홀' 등 그녀의 로코 전작들에 비해 이번 '아이두아이두' 속 그녀는 웃음기를 쏙 빼고 나섰다는 게 차이. 예쁘게 보이기보다 망가지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통통한 보통의 여자 삼순이가 되기 위해 살을 찌우기도, 시한부 암 환자가 되기 위해 살을 빼는 데도 주저가 없던 그녀다.

그녀가 유독 로코 장르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캐스팅이 되고 또 꾸준히 소비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로코라는 국한된 장르 속에서도 무궁무진 변신과 팔색조 연기가 가능한 배우라는 반증일 터다. 지나치게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나 캐릭터로만 소비되던 배우들이 금세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많이 봐왔다. 섹시한 댄싱퀸 이미지로 데뷔해 재미를 봤던 여가수들이 발라드 장르로 갈아타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도 바로 이미지 고정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그러나 김선아는 앞으로 10편의 로코에 더 출연한다고 해도 새롭게 보여줄 것이 남아있을 것만 같은 무한 신뢰를 준다. 미혼 여성들의 연애 고민, 사랑과 인생에 대한 반성이나 깨달음을 마치 내 여동생의 사연인 것처럼 혹은 앞집 언니 얘기인 것처럼 현실적으로 구현해내는 것도 그녀의 장점이다. 기본적으로 내숭 없고 털털하며 솔직한 그녀의 실제 성격도 그녀를 친근한 호감형 배우로 만들어놓았다.
1975년생, 어느덧 불혹을 목전에 둔 그녀다. 하지만 세계적인 '만인의 연인' 맥 라이언이 쉰 살을 앞두고도 로코의 여주인공이 될 수 있던 것처럼 김선아 역시 영원한 '로코의 연인'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대체불가한 '김선아표 로코'가 이미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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