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감독)과 '후궁 : 제왕이 첩'(이하 후궁, 김대승 감독)을 보고 공통되는 의문점을 갖는 관객들이 있다. 재미있긴 한데 '한국에서 진짜 저런 일이 벌어질 수있을까?'란 궁금증이 그것이다.
우선 장기 흥행에 돌입해 35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2012년 로맨틱코미디의 새 장을 연 영화로 임수정, 이선균, 류승룡 등 주인공 3인의 찰진 캐릭터들이 풍성한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 속 폭소를 책임지는 캐릭터는 류승룡이 분한 카사노바 장성기. 8등신의 꽃미남 외모는 아니지만 성기만이 가진 수컷의 매력은 전세계 여인들의 마음을 녹인다. 그는 온갖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마치 연예인처럼 여자무리를 이끌고 다닌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를 넘어 세계각국의 여자들이 그의 집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갈구한다.

그림 같은 펜트하우스에서 예술 작업을 하고, 특정한 직업은 없는 것 같은데 부유한 그는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얻는 리얼리티로 사랑받는 이 영화에서 판타지 같은 느낌으로 묘한 이질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가 나오는 장면은 때때로 일순간 장르 파괴가 된다.
사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2008년 아르헨티나 영화 '아내를 위한 남자친구(Un novio para mi mujer)'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아내와 헤어지고 싶은데 이혼하자는 말을 할 용기가 없는 남편이 아내에게 남자친구를 만들어주고 스스로 떠나 가게 만든다는 내용이 같다. 결말까지도 원작과 비슷하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경우 굳이 외국 원작을 한국 정서에 맞게 리메이크했다는 느낌 보다는 로맨틱코미디의 장르적 특성을 살려 캐릭터에 집중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이 영화가 중장년층의 공감까지도 얻어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은 만국 공통이라는 사실도 느끼게한다.

그런가하면 '후궁'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배경을 지운다면 우리가 모르는 외국 어느 나라의 왕좌의 게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배경이 의미가 없다. 특히 고대 비극을 연상케한다는 반응이많다.
사랑에 미치고, 복수에 미치고, 권력에 미치고,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지독한 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이 에로틱 궁중사극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장센에서도 어머니의 치마폭에 벗어날 수 없는 왕과 그런 아들-왕을 짓누르는 대비의 연극적 위치, 사극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던 지하 감옥이나 왕과 중전의 정사신 등의 설정이 마치 조선시대를 '차용'한 그리스 비극같다. 조상경 의상감독 역시도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생각났다고 밝힌 바 있다.
자칫 '후궁'은 드라마에서 수없이 반복된 왕좌를 차기하기 위한 암투를 다룬 이야기로 식상할 법도 했지만, 이런 캐릭터의 묵직함으로 드라마와는 또 다른 무게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로 '후궁'은 과거에 투영된 현재의 풍경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시대적 배경은 모호한 판타지다. 정확치 않은 '과거'라는 어느 시점은 '재연'이라기 보다는 창조된 미술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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