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야, 비상사태.”
지난 5월 30일 LG와 롯데의 경기가 열리는 부산 사직구장. 경기 개시 약 90분 전 LG 김무관 타격코치는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며 코칭스태프를 소집했다. 이날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로 예정됐던 이병규(7번·29)가 허리에 통증을 느끼며 경기에 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병규 자리에는 양영동이 들어서며 새로운 라인업이 만들어졌지만 LG 김기태 감독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김 감독은 덕아웃에서 이병규와 눈이 마주쳤고 이병규를 향해 “한국시리즈 7차전인데도 못나간다고 할 정도면 진짜 못나가는 거겠지. 하지만 만일 네가 타격 1위를 달리고 있는데 오늘이 시즌 마지막 경기고 규정타석에서 4타석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그래도 못 나간다고 할까?”라고 강하게 꾸짖었다. 언제나 선수들에게 감독보단 큰 형 같이 다가가는 김 감독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누구보다 이병규의 재능을 잘 알고 있기에 김 감독 입장에선 이병규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컸다. 전날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멀티히트로 시즌 타율 4할을 기록, 지난 시즌 부상을 딛고 올 시즌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 이병규의 결장 소식에 김 감독도 낯선 풍경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이병규는 이후 2경기만 결장했고 꾸준히 타격 컨디션을 유지하며 10일 현재 타율 3할9푼1리 OPS(장타율+출루율) 1.016로 LG 타선의 핵심 열학을 소화하고 있다. 홈런과 3루타 없이도 장타율 0.509, 정확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출루율 5할7리를 기록하고 있는 이병규는 완벽에 가까운 기록만큼이나 그동안 LG에서 찾기 힘들었던 완성형 2번 타자로 진화 중이다. 실제로 2번 타자 출장 시 이병규의 출루율은 5할2푼8리로 규정타석을 채운 1위 김태균의 5할7리보다 높다. 현대 야구에서 강조되고 있는 강한 2번 타자의 면모를 100%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병규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였다. 신고선수 출신, 그리고 팀 프랜차이즈 스타와 동명이인으로 눈길을 받았지만 2군에서의 활약상은 ‘큰’ 이병규 못지않았다. 결국 2010시즌 103경기 307타수 출장, 타율 3할 12홈런 53타점을 기록하며 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듬해에도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2011시즌 전지훈련 청백전에서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했고 1군 복귀까지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시즌 끝까지 100% 컨디션을 만들지 못해 타율 2할5푼의 평범한 성적만큼이나 큰 아쉬움을 남긴 채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병규는 올해 전지훈련에서 부상과 관련한 모든 악몽을 씻었다. 무엇보다 체중감량에 매진하며 2010시즌의 몸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즌 전 “건강하기만 하다면,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있다. 기대하셔도 좋다”고 말했던 각오를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증명하고 있다. 현재 이병규는 김재현·서용빈부터 ‘큰’ 이병규, 그리고 박용택으로 이어지는 LG 황금 좌타라인의 후계자가 될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이병규가 활약하는 만큼 LG의 미래도 밝게 빛날 것이다.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