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책 같지만 야수에게 실책을 주어서는 안 되는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해 놓은 실책관련 야구규칙 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송구, 포구, 태그의 미스플레이가 아니라 공을 느리게 처리한 것은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심리적 혼동 또는 판단착오는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위의 야구규칙은 메이저리그에 적용되고 있는 규칙 원문에도 그대로 들어있는 내용으로 ‘mental mistakes’와 ‘misjudgments’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를 굳이 해석하자면 정신적인 실수, 잘못된 판단 정도로 이해될 수 있겠다.
그런데 야구경기를 보다 보면 야수들이 간혹 저지르는 본헤드 플레이성의 황당실수에 대해 어떤 때는 실책으로 기록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실책으로 기록이 되지 않기도 하는데, 헷갈리는 상황에서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공식기록원들의 판단기준은 과연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지난 6월 7일 삼성의 3루수 박석민은 KIA전(광주) 3회 말 2사 2루 때 이범호(KIA)가 친 3루 땅볼을 잡고 3루를 밟은 후, 태그상황을 포스상황으로 착각해 3루로 달려오는 2루주자 이용규를 태그하지 않고 곧바로 덕아웃으로 들어가려는 동작을 취하다 주자를 살려, 실책을 하나 추가한 일이 있었다.
그 보다 앞서 올 시즌 삼성의 내야진은 돌아가며 성격이 다른 본헤드 플레이성 실수를 이미 2번이나 범했던 터라 팬들로부터 일명 ‘멘탈 붕괴성 실책 3종 세트’라는 이름아래 따가운 질책을 받아야 했는데, 야구공부하는 셈치고 이러한 야수들의 본헤드 플레이성 실책이 기록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박석민 사례에 앞서 한 달 전인 지난 5월 6일, 1루수 채태인은 한화전(대구) 5회 초 무사 1루 상황에서 김경언(한화)의 1루땅볼을 잡아 등을 돌린 상태에서 느슨하게 1루로 접근하다 김경언보다 1루를 반박자 늦게 밟는 바람에 타자주자를 살려 허망한 실책을 기록하고, 한동안 실책을 저지른 것 이상의 더 큰 정신적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또한 유격수 김상수 역시도 6월 3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전 5회초 무사 1루 때, 최재훈(두산)의 유격수 앞 땅볼을 잡아 달려오는 1루주자 손시헌을 태그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급한 나머지 공이 들어있지 않은 빈 글러브로 태그, 주자를 아웃시키지 못하고 살려두는 바람에 결국 이 일이 다량실점의 빌미로 이어지고 마는 곤혹스런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이상 나열한 세 가지 사례의 수비실수 공통점은 모두가 공격측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주자를 잡아내는데 실패한 것으로 한데 묶어볼 수 있다, 또한 기록상으로도 모두 야수실책으로 기록될 수 있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실수들이기도 했다.
기록규칙 (b,c)항에는 ‘야수가 땅볼을 잡거나 송구를 받아 시간상으로 타자주나 또는 주자를 포스아웃이나 태그아웃 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주자나 루에 태그하지 못하여 주자를 살려주었을 때에는 그 야수에게 실책을 기록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박석민과 채태인의 실수를 심리적 혼동이나 판단착오 또는 느린 수비플레이로 간주, 기록규칙 이론을 근거 삼아 실책으로 몰아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야구적인 정서상 해당 야수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덮어버리기엔 아무래도 실수의 사안이 워낙 튀었던 까닭에 기록적으로도 면책은 어려운 상황들이었다.
만일 이들 상황에서 야수실책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김경언에게는 내야안타가, 2루주자 이용규는 타자의 도움으로 진루한 것으로 기록되어 모두 투수가 책임져야 하는 자책점 해당 주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론에 집착한 죽은 기록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권장할 만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김상수의 경우는 타자주자를 1루에서 포스아웃 시켰기에 1루주자 태그미스에 대한 책임은 법적으로 구제되어 기록상 실책으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과거 다양한 상황에 대한 기록법이 구체적으로 정립되기 이전에는 박석민과 채태인 같은 유형의 수비실수는 기록상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수비수의 착각성 플레이에 대해 가능한 한 그 책임을 따져 묻고자 하는 정신이 기록에 강하게 반영되어가고 있다. 이론에 매인 규칙문구로 인해 엉뚱한 선수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요즘 현장의 흐름이자 현실이다.
그렇다면 야수들이 저지르는 모든 본헤드 플레이성 실수들에 기록적으로도 책임을 물어 실책을 부여한다면 일 처리가 간단할 것 같지만, 야구규칙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질 않다. 비슷한 유형의 판단착오성 미스 플레이라 하더라도 야수에게 실책으로 기록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갈림목의 중심에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어 두 개가 이정표처럼 양 팔을 벌리고 서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착각’과 ‘착오’라는 이름의 방향표지이다. 다음 편에서는 ‘야수의 착각’과 ‘판단착오’에 관한 상황을 배경으로 본헤드 플레이와 실책의 상관관계를 좀더 풀어가도록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