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만남' 구자철-김정우, 최강희호에 의미있는 실험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2.06.13 08: 13

구자철-김정우가 운명적인 만남을 이뤄냈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12일 밤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2차전인 레바논과 경기서 A매치 데뷔골을 포함 2골을 터뜨린 김보경의 원맨쇼와 구자철의 쐐기골에 힘입어 3-0으로 완승했다.
최강희 감독은 카타르와 1차전과는 조금 다른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최전방에 이동국-이근호를 배치한 채 염기훈-기성용-김정우-김보경으로 미드필드 라인을 구축했고, 박주호-이정수-곽태휘-오범석이 포백 라인을 구성한 것.

카타르전서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구자철-김두현-최효진을 대신해 염기훈-김정우-오범석이 선발 출장의 기회를 잡았다. 핵심적인 변화는 기존 4-2-3-1의 포메이션에서 레바논의 밀집수비를 공략하기 위해 이동국-이근호 투톱을 축으로 하는 4-4-2 포메이션을 선보였다는 것.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레바논의 밀집수비를 뚫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바논은 전반 초반부터 잔뜩 움츠린 채로 수비 진영을 벗어나지 않았고 경기 흐름은 레바논이 바라는 대로 흘러갔다. 빈 틈을 파고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전반 29분 김보경의 골이 터지기 전까지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예기치 않던 변수를 맞았다. 최강희호 전술의 핵심이자 대체불가인 '중원사령관' 기성용이 허벅지에 이상이 생긴 것. 그렇게 전반 20분 구자철이 기성용 대신 그라운드를 밟으면서 구자철-김정우의 어색한 만남은 이루어졌다.
그동안 둘은 그라운드에서 함께 하지 못했다. 아니 함께 할 수 없었다. 조광래 전 감독의 주무대였던 2011 아시안컵서는 기성용의 파트너로 이용래가 낙점됐고, 그의 애제자 윤빛가람이 남은 미드필드 한 자리를 차지하며 김정우는 도하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반면 구자철은 아시안컵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후 친선경기와 월드컵 3차예선 경기서도 둘의 포지션이 겹치는 이상 공존하기 어려웠다. 항상 선의의 경쟁자였다. 구자철이 선발로 나오면 김정우와 교체아웃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였다. 지난해 9월 열린 3차예선 레바논전과 쿠웨이트전도 '구자철 선발 후 김정우 교체' 공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둘은 레바논전서 운명의 만남을 가졌다. 2010 남아공 월드컵서 기성용과 짝을 이뤘던 김정우는 오랫만에 선발 출격하며 김두현 대신 기성용의 파트너가 됐고, 구자철 또한 전반 20분 기성용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둘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났다.
처지도 비슷했다. 구자철은 지난 카타르전의 부진을 레바논전을 통해 어떻게든 씻어내야 했고, 오랫만에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우도 자신이 가진 기량을 최강희 감독에게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둘은 이를 악물고 한국의 중원을 책임지며 공격의 출발점에 섰다. 숏패스와 롱패스를 적절히 섞어가며 중앙과 측면에 비교적 원활한 볼 배급 임무를 수행했지만 과욕이 발목을 잡았다. 때론 볼 터치가 투박했고, 슈팅 타이밍은 반 박자 느렸으며 배후를 노리는 날카로운 침투 패스도 선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숨겨놓았던 공격적인 재능은 맘껏 뽐냈다. 전반 43분 김보경의 전진 패스를 받은 김정우는 날카로운 문전 침투를 통해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냈고 구자철은 후반 44분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통렬한 왼발 슈팅으로 레바논을 격침시켰다.
이날 구자철-김정우의 조합에 100점 만점을 줄 수 없었지만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기성용이 부상에서 돌아오면 이 둘의 조합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은 대표팀에 꼭 필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은 잃을 것이 없다. 기성용이 복귀하더라도 기성용-김정우 허리 라인과 공격형 미드필더에 구자철이 배치되는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 여하튼 구자철-김정우의 조합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본선이 최종 목표인 국가 대표팀에는 의미있는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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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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