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이대호(오릭스 버펄로스)가 롯데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자리에 대해 입을 연 적이 있다. "어느 팀이건 4번을 친다는 중압감은 대단하다. 여기(오릭스)에 와서도 반드시 타점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한 이대호는 "특히 롯데의 4번 타자는 더욱 그렇다.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언제나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정말 롯데의 4번 타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대호의 말은 현재 롯데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벌써 네 명째 돌아가며 4번 타자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홍성흔만 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홍성흔은 4번 타자로 출전한 37경기서 타율 3할8리(133타수 41안타) 6홈런 22타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그렇지만 홍성흔이 갈비뼈 실금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자 4번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전준우가 그 자리를 잠시 채웠지만 타격 컨디션이 한창 내려가 있을 때여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다음엔 강민호가 나섰지만 4번 자리에서 8타수 1안타로 침묵했고, 설상가상으로 10일 사직 KIA전에선 오른손에 공을 맞아 엄지에 타박상을 입었다.

결국 양승호 감독의 선택은 황재균이었다. 황재균은 두산과의 주중 3연전 모두 4번 타자로 출장했다. 초중고 포함 야구선수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4번 자리를 맡은 것. 양 감독은 "황재균은 기대 안 할 때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수비만 잘 해주면 된다"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3연전에서 황재균은 13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12일 1차전은 6타수 1안타, 2차전은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그리고 14일 경기에서 황재균은 4타수 무안타로 다시 침묵했다. 이날도 황재균 타석에 1회 1사 1,2루, 3회 1사 2루, 7회 무사 만루의 기회가 걸렸지만 시원한 적시타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완벽한 실패 카드는 아니었다. 1차전에서 황재균은 연장 11회 내야안타로 출루, 정보명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동점주자가 됐다. 결국 그날 경기는 롯데가 밀어내기 볼넷으로 승리를 거뒀다. 또한 이날 경기에서 황재균이 6-6으로 맞선 7회 무사 만루에서 기록했던 땅볼은 사실상 안타성 타구였다.
손시헌의 호수비에 막혀 1루주자가 아웃됐고 그 사이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스코어는 7-6. 결승점이 될 뻔한 이 점수는 9회초 양의지의 역전 투런이 나오며 7-8로 역전패를 당했다. 그리고 7회 타석에서 자신의 타구에 발등을 맞아 대주자로 교체됐던 황재균은 9회말 4번 자리에 나서지 못한 채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그만큼 4번 타자가 갖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홍성흔이 시즌 초 "난 롯데의 4번 타자가 아니다. 네 번째 타자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4번 자리가 갖는 무게감을 방증한다. 양 감독은 15일부턴 복귀 예정인 강민호를 4번으로 내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연 롯데 4번을 채울 적임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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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