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타자. 한 팀에 제대로 된 4번 타자 한 명만 있다면 리그 운용은 쉬워진다. 지난해 삼성은 팀 타율 6위(.259)에 그쳤지만 최형우(타율 .340 30홈런 118타점)라는 걸출한 4번 타자가 등장하면서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한민국 최고의 4번 타자를 보유했던 롯데 역시 꾸준히 순위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강호로 거듭났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4번 타자를 찾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한 시즌을 4번 타자 걱정없이 보내는 팀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한 현상은 올 시즌 더욱 두드러지는데 넥센 박병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4번 자리에서 변동이 있었다. 그렇다면 각 팀별 4번 타자 유형별 기상도는 어떻게 될까.
▲ '터줏대감'형 - 넥센, 한화, 두산, LG

넥센의 4번 타자 자리는 '노터치'다. 올 시즌 넥센은 8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단 한 명의 4번 타자만을 보유했다. 넥센 김시진 감독이 공언했던 바 대로, 박병호는 넥센이 치른 전 경기에 모두 선발 4번 타자로 출전했다. 믿음 속에 박병호는 타율 2할8푼4리 13홈런(4위) 51타점(1위)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한화 김태균 역시 4번 자리에 고정이다. 김태균은 올해 단 두 경기만 감기몸살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그 때마다 최진행이 4번 자리를 채웠다. 김태균은 현재까지 타율 4할1리 7홈런 38타점으로 30년 만에 4할 타율에 도전하고 있다.
한 지붕 두 가족인 LG와 두산 역시 터줏대감들이 지키고 있다. LG 정성훈은 시즌 초 4번으로 낙점된 뒤 홈런을 몰아치는 등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타격 슬럼프에 빠지며 4번 자리를 최동수(8경기), 박용택·윤요섭·이병규(각 1경기)에 넘겨주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4번으로 고정 출전중이다. LG가 치른 55경기 가운데 44경기서 4번으로 출전했다. 두산 김동주 역시 54경기 가운데 44경기에 4번 타자로 출전하며 타선 중심을 잡고 있다.
▲ '자연스러운 임무교대' 형 - SK, KIA
반면 자연스럽게 바통 터치를 한 팀도 있다. SK는 시즌 초반 안치용이 13경기동안 4번 자리를 지켰으나 그 기간동안 타율 2할2푼7리 2홈런 8타점으로 부진했다. 이만수 감독의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한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이호준이다. 최근 3시즌 동안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던 이호준은 4번 자리에 들어간 42경기에서 타율 2할8푼3리 8홈런 30타점으로 제 몫을 충실히 해 주고 있다.
KIA 역시 마찬가지다. 시즌 초 최희섭과 나지완이 번갈아가며 4번 타자를 맡았던 KIA는 큰 재미를 못 봤다. 최희섭은 4번으로 나간 28경기서 타율 2할4푼5리 2홈런 21타점을 기록했고 나지완은 3경기서 타율 2할3푼1리 1타점으로 부진했다. KIA는 이범호가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꾸준히 4번으로 출전하고 있다. 이범호는 4번으로 나간 22경기서 타율 3할6푼8리 1홈런 13타점으로 활약 중이다. 다만 KIA 타선이 전체적으로 침체돼 있어 타점을 올릴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아쉽다.

▲ '주인을 찾습니다' 형 - 삼성, 롯데
지난해 리그에서 가장 확고부동한 4번 타자를 보유했던 두 팀. 삼성 최형우와 롯데 이대호는 시즌 막판까지 홈런, 타율, 타점 등 타격 전 부문에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올 시즌은 4번 자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은 최형우가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까지 다녀왔고 롯데는 이대호 공백을 채우는 데 골몰하고 있다.
삼성은 시즌 초 최형우가 23경기에 4번 타자로 나섰으나 타율 1할8푼 무홈런 8타점으로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이후 삼성은 상대 선발투수의 유형에 따라 이승엽과 박석민이 번갈아 4번 자리를 맡고 있다. 다행인 점은 둘 다 제 몫을 한다는 점. 이승엽은 4번으로 나선 21경기에서 타율 3할1푼3리 6홈런 19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원래 자리인 3번(타율 .368 8홈런 27타점)에서 보다는 약간 떨어지는 성적이다. 박석민은 4번에서 11경기를 치르며 타율 2할6푼8리 1홈런 6타점을 기록했다. 이 역시 올 시즌 성적(타율 .307 12홈런 44타점)보다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결국 최형우가 살아나 4번에 안착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롯데 역시 4번 자리가 고민이다. 홍성흔이 그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지만 최근 오른쪽 갈비뼈 실금 부상을 당해 당분간 출전이 힘든 상황이다. 6월 말까지는 그 자리를 다른 선수가 채워야 한다. 하지만 4번 자리에 들어간 다른 선수들은 모두 부진을 면치 못 하고 있다. 전준우(12G 타율 .225 2타점), 황재균(3G 타율 .077 1타점), 강민호(3G 타율 .167 1홈런 1타점) 등 모두 제 기량을 못 펼치고 있다. 그나마 강민호가 16일 목동 넥센전에서 홈런을 터트리며 제 몫을 했다. 홍성흔이 돌아올 때까지 당분간 롯데는 강민호 체제로 나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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