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구제해줬기 때문에 첫 승도 가능하지 않았겠나."
15일 SK와 한화 경기가 열리기 전 문학구장 한화 덕아웃. 한화 투수 김혁민을 비롯해 여러 후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SK 베테랑 최영필(38)의 표정은 한 없이 밝았다.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잠시 후 최영필은 마운드에 올랐다. 2-2로 팽팽하던 8회 7이닝을 2실점으로 호투한 선발 윤희상에 이어 나선 최영필. 그리고 10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 자신을 상대로 채비를 갖추고 있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최영필은 첫 타자 장성호에게 우측 2루타를 맞아 위기를 맞았다. 다시 몇시간 전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최진행에게 볼넷을 허용, 무사 1,2루 위기를 맞았다. 고동진을 포수 파울플라이로 처리, 한숨을 돌린 최영필은 이대수의 2루 땅볼로 2사 2,3루까지 갔다. 하지만 한상훈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마운드를 내려섰다.
그러자 8회말 김강민의 2타점 2루타가 터지면서 최영필은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최영필은 선두타자 신경현에게 좌전안타를 내줬다. 하지만 오선진을 2루 땅볼로 유도, 포스아웃을 시켰다. 결국 박희수에게 볼을 넘겼고 4-2 SK 승리가 그대로 굳어졌다.
경기가 끝난 후 만난 최영필의 표정은 웃을 듯 말 듯 확실하게 속내가 드러나지 않았다. 환한 웃음보다는 가벼운 미소에 가까웠다.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 했다.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몸 담았던 애증의 친정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 많은 감정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한화는 지난 2010시즌 FA를 선언한 최영필을 밀어냈던 구단이었다. 다른 구단이 보상선수에 난색을 표시했다. 그렇다보니 최영필에게는 한화 복귀가 유일한 현역 연장 수단이었다. 그러나 한화는 최영필을 다시 받아주지 않았다. 최영필은 현역 연장을 위해 미국, 남미, 일본 등의 독립리그를 떠돌아 다녀야 했다. 작년을 통째로 날린 최영필. 한화는 대승적 차원에서 FA 보상규정에 묶여 있던 최영필을 구제해줬다. 그러면서 최영필은 SK와 계약, 올 시즌을 도모할 수 있었다.
당시 한화는 이날 최영필의 첫 승 제물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전한 쓸만한 전력을 조건 없이 풀어줄 때는 어느 정도 각오했던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어렵게 한국프로야구에 복귀했고 오랜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그런데 그게 또 마침 한화라서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는 최영필은 "한화 구단에 정말 감사한다"면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줬기에 오늘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지 않았겠나"라고 고마워했다. 이어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때 노재덕 한화 단장님, 이상군 운영팀장님 등 한화 구단 관계자들을 찾아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는 최영필은 "나도 친정팀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둘 줄은 정말 몰랐다"고 기쁘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운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최영필은 아직 앙금이 남아 있을지도 모를 한화에 대해 "한솥밥을 먹었던 선배, 후배들이 있는 친정팀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인정하면서 "더구나 최근 연패 때문에 힘들텐데 잘되길 바란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애증의 친정팀 한화에 쿨한 모습을 보인 최영필은 하지만 "나의 첫 승 보다는 팀이 1승을 추가한 것이라 여기겠다"면서 "마운드에 서 있는 순간 만큼은 친정팀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저 페넌트레이스의 한 경기를 한다고 여기고 집중했다"고 담담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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