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파격적으로 바꿔서 (유상철 감독도)명단 보고 놀랐을거야".
정해성 감독은 자신이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휴식기가 끝난 후 첫 경기인 대구전에서 대패하고 한창 상승세에 있는 대전을 상대로 들고 나오기엔 다소 실험적인 라인업이었다. 하지만 정 감독은 도박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17일 오후 5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16라운드 원정경기 대전전에서 전남은 파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색다른 명단을 선보였다. 공영선을 비롯 이상호와 정근희 신영준 등 낯선 이름들이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골키퍼 장갑도 부동의 수문장 이운재 대신 류원우가 꼈다.

그동안 주전으로 나오지 못했던 선수들이 대거 기용됐다.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전체적인 차원의 변화였다. 더블 스쿼드라고 하기에는 무게감의 차이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경기 전 정 감독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풀어나가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음을 보였다.
정 감독이 일견 무모하게 보이는 승부수를 띄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2주간의 달콤한 휴식기를 가진 대신 6월의 남은 일정은 K리그 팀들에 있어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혹서기에 2~3일의 간격을 두고 계속 경기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 따라서 18일 동안 총 6경기를 소화해야하는 빡빡한 일정을 고려해 꾸준히 생각해왔던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전남은 14일 대구전(홈)을 시작으로 17일 대전전(원정) 20일 전북전(원정) 23일 광주전(원정) 27일 수원전(원정) 7월 1일 울산전(홈)의 6연전을 소화해야 한다. 특히 일정 중간의 4경기가 모두 원정인 만큼 체력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정 감독은 "대구전 결과와는 상관 없이 원래부터 대전전에 이렇게 하겠다고 결정했던 일"이라며 "이 경기에서 세컨드 멤버들에게 기회를 못 주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 것 같더라. 어린 선수들이 많다고 하지만 유럽이라면 지금 한창 날아다닐 때다. 90분 동안 그라운드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나오라고 했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이날 정 감독이 들고 나온 라인업은 '믿음'이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 있다. "내가 너희를 믿고 기용하는데 어디 없는 것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실수할 수도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좋은 경기를 하라, 나를 믿고 따르라"는 정 감독식 믿음의 리더십인 셈이다.
"경기 결과가 중요하다. 이럴 때 튀어나오는 선수가 있으면 좋은데…"라며 허허 웃은 정 감독의 믿음은 승리라는 결과로 보답받게 됐다. 상승세의 팀을 맞아 더 강하게 생각하고 맞서라던 감독의 지령을 수행한 선수들은 대전의 거친 공세를 맞아 흔들림 없이 경기를 풀어갔다.
베테랑 이운재 대신 골키퍼 장갑을 낀 류원우는 PK까지 막아내는 눈부신 선방을 거듭하며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신영준은 후반 35분 그림 같은 프리킥 골을 터뜨리며 원정 승리를 만들어냈다. 빡빡한 일정 속 숨통을 틔워주는 달콤한 승리이자 믿음으로 일궈내 더욱 값진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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