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 올해도 가장 끈질긴 타자…"초구아웃, 땡큐"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6.19 10: 58

"초구 건드려서 죽어 주면 고맙죠".
마운드에 선 투수들에겐 어떤 타자가 가장 까다로울까. 일단 높은 타율을 유지하는 타자는 어렵게 상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실점 위기에선 더욱 공을 들여야 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장타력까지 있으면 차라리 피해가는 게 낫다. 19개의 홈런으로 이 부문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넥센 강정호가 고의사구 부문 1위(5개)를 달리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장타가 없어도, 타율이 높지 않아도 KIA 이용규는 투수들로부터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자로 꼽힌다. 2스트라이크를 잡은 후에도 계속 커트를 해 나가며 투구수를 늘려놓기 일쑤다. 이용규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된다면 선발 투수는 그날 경기의 밸런스가 흐트러지게 되고, 불펜 투수는 자칫 이용규 한 타자만 상대하고 마운드를 내려가야 할 지도 모른다.

커트의 달인, 이용규의 위력을 제대로 입증한 경기는 2010년 8월 28일 광주 넥센전이다. 그날 이용규는 박준수를 상대로 20구 승부를 펼쳐 한 타자 역대 최다 투구수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볼 카운트 2볼 1스트라이크에서 이용규는 무려 10구 연속 파울로 커트를 했고 볼을 하나 얻은 뒤 다시 5개의 커트를 했다. 결국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박준수 역시 곧바로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한 이닝에 던질 공을 한 타자에게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타격에 출루 한다면 언제 뛸 지 모르는 빠른 발이 있기에 투수들은 이용규를 가장 껄끄러운 타자로 꼽길 주저하지 않는다. 올 시즌 타율은 2할6푼7리를 기록 중인데 24개의 도루로 이 부문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비록 전체 55개의 안타 가운데 장타는 단 3개(2루타 2개, 3루타 1개)지만 마운드에서 투수의 혼을 쏙 빼놓기에 거포 만큼이나 부담스러운 타자다. 한 구단의 투수는 "이용규가 초구를 건드려 죽어 주면 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계속 하게 된다"고 까지 말했다.
투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이용규의 커트 신공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이용규는 1041개의 공을 상대해 한화 장성호(1065개)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총 251타석에 들어섰으니 한 타석 당 투구수는 4.15개다. 또한 파울 개수는 211개로 전체 타자들 가운데 1위다.
2스트라이크를 잡은 이후에도 투수들은 안심할 수 없다. 2스트라이크 이후 이용규의 타율은 2할5푼5리로 본래 타율보다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2스트라이크 노 볼 상황에서 이용규의 타율은 3할3푼3리다. 선구안이 좋고 커트를 많이 하는 이용규를 상대로 투수들이 성급하게 승부를 들어가다 맞는 경우가 많다. 
시즌 볼넷은 35개, 덕분에 출루율은 3할8푼7리로 4할에 육박한다. 일단 나가면 이용규는 가장 까다로운 타자에서 주자로 탈바꿈한다. 시즌 24개의 도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용규는 도루시도 역시 32개로 전체 1위다. 도루를 하지 않더라도 1루에서 리드폭을 길게 가져간 뒤 투수들의 신경을 긁어 놓는다. 투수들이 이용규를 잡고 나면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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