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를 탄 게 아니고 우리가 잘하는 거 아닌가요?".
부쩍 밝아진 얼굴의 유상철 감독에게서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비록 지난 17일 16라운드 전남전에서 '사실상 2군' 선수들에게 호된 일격을 당하며 무패 행진은 끊겼지만 여전히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용병 케빈 오리스가 살아나면서 김형범과 지경득까지 합세했고 부상으로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물러나 있었던 남궁도도 돌아왔다.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았던 초반에 비해 조직력도 물이 올랐고 선수들은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에게 달려든다. 최근의 호성적에 "우리가 잘하는 것 아니냐"며 유 감독이 웃을 수 있는 이유다.

올 시즌 K리그가 개막했을 때만 해도 대전은 강등권 0순위 후보였다. 유 감독은 자존심이 상했다. 리그 개막을 앞두고 가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호기롭게 8위 입성을 외쳤지만 초반 성적은 1승9패로 부진했다. 6연패를 달리던 와중에는 쉴 새 없이 감독 경질설이 흘러나왔다. 안팎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선수단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신경이 안쓰인 것도 아니다. 유 감독은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울산전 패배로 의기소침해진 선수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구단 직원도 없이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끼리만 모여 회식을 가졌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해봐라. 마음을 털어놔라"고 허심탄회하게 다가갔다. 고참들이 먼저 유 감독을 위로했다. 유 감독은 오히려 자신을 먼저 위로하는 선수들을 다독였다.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 소득이 있었다. 회식 다음날 훈련장으로 나온 유 감독은 선수들의 무언가가 바뀌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서먹하게 놓여있던 벽이 깨지고 끈끈하다는 느낌이 그 자리를 메웠다. 유 감독은 무릎을 쳤다. "아, 선수들을 먼저 융합시켰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터닝 포인트는 수원전이었다"고 유 감독은 복기한다.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초반 한국에 너무 적응을 잘한 탓인지 몸이 불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케빈도 "2kg 빼고 오라"는 감독의 지시에 긍정적으로 임했다. 울산전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자 이를 악물고 독기까지 품었다. 홈에서 수원을 만나면 유난히 강해지는 징크스도 있었지만, 선수들이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결과는 짜릿한 승리였다.
상승세에 특별한 비결은 없다. "선수들 본인이 이기는 법을 알게 됐다. 지지 않는 법을 배우고 이기는 경기를 하는 법을 알게 된 셈이다"고 선수들을 칭찬한 유 감독은 "이제 더 이상 개막 직후처럼 소극적인 플레이를 보이거나 지고 있을 때 무너지는 법이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전남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반 35분 상대 신영준의 그림같은 왼발 프리킥이 골망을 흔들었지만 선수들은 무너지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결정적인 한 방과 PK실축이 너무나 아쉬운 경기였지만 유 감독은 열심히 싸워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5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면서도 자신감이 과해 혹여나 선수들이 '오버'하지 않을까 걱정이라던 유 감독은 전남전 패배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얻었다.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으로 빠질 수도 있었던 시기에 2군이나 다름없는 상대에게 패한 충격은 선수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을 것이다.
"자신감만큼은 16개 구단 그 어느 팀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대전은 좋은 분위기에 올라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승2무10패(승점 14)로 리그 15위에 머무르고 있다. 19일 FA컵 상주전을 시작으로 소화해야 할 6월의 남은 경기 일정을 생각하면 숨돌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유 감독은 더이상 초조해하지 않는다. "이제 축구가 재밌다"는 유 감독의 대전이 과연 올 시즌 K리그에서 가장 극적인 강등권 탈출 드라마를 써내려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costball@osen.co.kr
대전 시티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