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기 5도루’ 두산, 살아난 ‘육상부 본능’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06.20 06: 19

지난 몇 년 간 타 팀이 보는 ‘두산 베어스가 가장 무서웠던 때’는 언제였을까. 타 구단 관계자들은 “뛸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다음 베이스를 노려 단숨에 득점 찬스를 만들고자 하는 플레이”를 자주 꼽았다. 2010년 거포 군단 변신 후 잠시 숨겨졌던 두산의 ‘육상부 본능’이 19일 잠실 넥센전에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두산은 19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2012 팔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넥센전서 7이닝 3실점 호투한 니퍼트와 6회 터진 최주환의 결승 2루타를 앞세워 4-3으로 역전승했다. 두산은 이날 승리로 시즌 전적 29승 1무 27패(승률 5할1푼8리, 19일 현재)를 기록하며 5위에서 LG, 넥센과 함께 공동 3위로 단숨에 두 계단 뛰어올랐다. 중상위권이 살얼음 구도로 이어지면서 생긴 기묘한 순위 변동이다.
경기 내용을 봤을 때 주목할 만 한 점은 바로 주자들의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였다. 이날 2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장한 이종욱은 3회와 5회 2개의 도루를 성공시켰고 최주환과 정수빈, 고영민도 도루 하나 씩을 보탰다. 이종욱은 간만에 한 경기 2도루를 수확하며 7년 연속 한 시즌 두 자릿 수 도루(역대 20번째) 달성에 성공했다.

김경문 감독 재임 시절이던 2007년 두산은 에이스 박명환(LG)의 프리에이전트(FA) 이적과 잇단 세대교체로 인해 약체 전력으로 평가받았던 팀이다. 그해 4월 한 달간 두산은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두려움 없이 뛰는 주자들의 움직임이 상대 배터리를 교란시키며 팀 도루 161개로 1위를 기록하는 동시에 한 베이스 더 가는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 분위기가 확산되며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종욱이 47도루로 도루왕 2연패에는 실패했으나 2위에 올랐으며 고영민이 36도루(3위), 민병헌(경찰청)이 30개의 베이스를 훔치며 ‘육상부 3인방’으로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주포 김동주도 그 해 11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적극적으로 뛰었던 두산은 민병헌이 주춤한 사이 오재원이 떠오르는 등 2009시즌까지도 팀 도루 부문 최상위권을 지키며 팀 컬러를 바꿨다.
전신 OB 시절까지 포함해 과거의 두산이 김광수, 김민호, 윤승균 등 소수의 준족들이 앞장서 뛸 뿐 전체적으로는 빠르지 않은 팀 컬러였던 반면 2000년대 말 두산은 정신없는 발야구로 다이아몬드를 헤집는 스타일의 야구를 추구했다. 그러나 2010시즌 한 방에 중점을 두는 야구로 바뀌면서 어느 순간 두산 특유의 무서움이 점점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해 말부터 지휘봉을 잡은 김진욱 감독도 그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타순이 고정화될 경우 4번부터 8번까지 뛰는 야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라인업이 갖춰지게 된다”라는 점을 이야기했던 김 감독은 19일 경기에 고영민을 6번 타자로 배치하는 수를 띄웠다. 주루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선수들을 획일적으로 배치하기보다 하위타선 선봉으로 베이스러닝 능력을 갖춘 고영민을 일단 놓은 것이다.
이날 고영민은 8회 유격수 내야안타에 이어 2루 도루를 성공시킨 뒤 최재훈의 3루 땅볼 때 3루 진루를 노리다가 태그아웃 되고 말았다. 3루수 지석훈의 송구 동작에 맞춰 귀루하려다 다시 방향을 바꿔 3루를 노렸으나 아웃된 고영민의 플레이. 결과적으로는 본헤드 플레이였으나 이는 과거 고영민이 즐겨했던 주루였다. 잇단 발목 부상 등에 이은 침체기를 걷기 전 고영민은 후속 타자의 내야 땅볼 때 2루에서 홈까지 노려 득점하는 장면도 연출하던 ‘주루 기술자’였다.
지난해 1군 타율 1할1푼4리에 그쳤던 2년차 외야수 정진호의 시즌 첫 1군 등록도 두산이 변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관련했을 때 눈여겨봐야 한다. 정진호는 지난 시즌 타석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으나 4번의 도루 시도를 모두 성공시켰다. 올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3할4리의 타율을 기록한 정진호는 15개의 도루로 19일까지 북부리그 도루 1위에 올라있다. ‘핀치 러너’로서 가능성을 높이 산 것이다.
“원래 정진호를 잠실 삼성 3연전 중 1군에 올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주전 포수 양의지가 오른 엄지 부위에 약간 부상을 입어 포수 박세혁을 먼저 올리고 이틀 뒤 정진호를 콜업한 것이다. 뛸 줄 아는 주자인 허경민의 페이스가 좋은 편이 아니라 정진호가 필요하다고 봤다”. 적어도 주루 플레이에 있어서는 팀 내 굴지의 능력을 지닌 만큼 필요한 순간 대주자로 활용하고자 한다는 감독의 뜻. 빠른 발을 적극적으로 앞세울 주자도 중용하겠다는 복선과 같다.
‘두산다운 야구를 하고 싶다’라는 김 감독의 이야기는 경기 후반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과 함께 잃을 것 없이 적극적으로 뛰는 모습도 바란다는 것과 같다. 19일 경기서 4-3 역전승을 거둔 후 김 감독은 “주자들의 활발한 베이스러닝이 좋았다”라며 칭찬했다. 두산이 오랜만에 보여준 한 경기 5도루는 살얼음 구도 돌파를 노리는 팀의 해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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