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뜨거운 황혼을 위하여
OSEN 김나연 기자
발행 2012.06.20 21: 59

석양은 한낮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다. 뜨거운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석양은 차가운 달빛에게 자신의 온기를 떼어 주고 수면 뒤로 유유히 사라진다. 황혼기의 접어든 이들도 석양과 같다. 언제든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하지만 그 속에는 뜨거운 열정이 잠들어 있다.
은퇴 후 황혼기에 접어든 일곱 명이 ‘황금 같은 노년을 위한 기품 있는 호텔’이라는 광고에 이끌려 인도를 찾는다.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저마다의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을 꿈꾸면서 말이다.
부푼 꿈을 안고 인도를 찾은 이들을 반기는 건 끝내주는 비주얼의 호텔이 아닌 지나치게 엑조틱(이국적인) 호텔. 리모델링 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방문도 달지 않은 호텔의 몰골에 여행객들은 할 말을 잃고 만다. 리모델링을 하면 다 괜찮아 질 것이라며 오히려 투숙객들을 안심시키는 인도인 지배인 소니(데브 파텔)의 뻔뻔함 앞에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메리골드 호텔을 찾은 이들 중에는 남편과 사별한 후 생애 첫 홀로서기에 도전하는 에블린(주디 덴치)과 삶에 환멸을 느낀 고등법원 판사 그레이엄(톰 윌킨슨), 다툼이 끊이지 않는 부부인 더글라스(빌 나이)와 진(페네로프 윌튼), 사랑에 목숨을 건 노먼(로널드 픽업)과 매지(셀리아 아임리), 오직 필요한 수술을 위해 인도를 찾은 뮤리엘(매기 스미스)이 있다. 풍부한 인생 경험만큼이나 각기 다른 성격과 사연을 가진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낯선 인도 음식에 적응하느라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건 기본, 호텔방에서 바퀴벌레들에 이름을 붙이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 돼버린다. 일곱 명은 소소한 변화들을 통해 잔잔한 웃음과 함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을 지닌 캐릭터와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들을 그린다는 점에서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달콤한 로맨스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러브 액츄얼리’는 현재까지도 국내 관객들에게 꾸준히 회자되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바이블. 
하지만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 황혼기의 원숙한 경험을 지난 남녀들의 이야기로 진실한 사랑과 인생의 가치를 조명하는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영화는 인생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일에 나이는 상관없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세상인 인도로 떠나고, 동시에 대책 없이 이국적이기만 했던 메리골드 호텔은 리모델링을 거쳐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메리골드 호텔과 일곱명의 주인공은 천천히, 그렇게 변화한다.
변화는 언제나 두렵지만 더욱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현재와 똑같은 미래가 아닐까. 그래도 아직 선뜻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 더 좋을 수 있다”는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용기가 될지도 모른다. “모든 변화에 기쁘게 반응하세요. 결국엔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에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 때가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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