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도루 시도와 무리다 싶을 때 한 베이스 더 가는 플레이. 틀을 깨는 주루와 수비 시프트로 골든글러브 수상에 이어 국가대표 2루수로까지 우뚝 섰으나 3년 반 가량 부상과 슬럼프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고제트' 고영민(28, 두산 베어스)이 다시 멈췄던 엔진에 시동을 켰다.
고영민은 21일 잠실 넥센전에 9번 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해 5회 좌익수 방면 1타점 선제 결승 2루타를 때려내며 팀의 3-0 영봉승에 공헌했다. 그러나 5회 결승타 직후 뒤를 이은 최주환의 좌전 안타 때는 홈까지 노리다 좌익수 장기영의 호송구에 횡사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 홈 대시는 추가득점 없이 이닝이 끝났던 만큼 독이 될 수 있던 플레이다. 송구도 고영민의 움직임과 겹치지 않고 포수 허도환이 잡기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누가 봐도 아웃타이밍이었다.

여기서 고영민은 포수 허도환의 시야 앞 쪽으로 피하며 오른 다리로 홈플레이트를 파고드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이미 태그가 빨랐기 때문에 아웃으로 판정되었으나 고영민은 아웃 판정 후에도 끝까지 발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슬라이딩만큼은 과거 고영민의 슬럼프 이전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한 야구인은 고영민의 홈 대시에 대해 "시도 자체는 좋았다. 타구도 짧았고 장기영의 송구가 좋아 아웃이 당연했으나 상대 간담을 서늘하게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주루였고 태그를 피하려 보여준 훅 슬라이딩 기술도 좋았다. 대기 타석에 있던 정수빈이 고영민을 좀 더 베이스라인에 가깝게 뛸 수 있도록 유도했다면 크로스 플레이를 유도해 세이프 판정도 받지 않았을까 싶다"라며 결과보다 과정을 높게 샀다.
19일 경기서 고영민은 최재훈의 유격수 땅볼 때 2루에 진루해 있다가 스킵 동작 후 강정호의 1루 송구에 맞춰 3루로 뛰는 과감성을 보여줬다. 비록 박병호의 호송구에 걸려 아웃되었으나 김진욱 감독은 '적극적으로 뛰었다는 점에서 고영민을 탓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적극적인 모습이 필요한 두산에서 주자가 어떻게 상대 허를 찔러야 하는 지 보여준 고영민의 노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일 경기서 고영민은 8회 결정적인 찬스를 삼진으로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도루 시 베이스 모서리를 잡고 오버런을 막으며 루를 훔쳤다. 이는 고영민이 2000년대 후반 도루를 성공시키며 자주 보여주던 모습이었다. 순간순간의 과감한 주루 시도에서 고영민이 주전 2루수로 뛰던 때의 모습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2009시즌 발목 부상 후 잇달아 비슷한 부위를 다치면서 자신감까지 떨어져 위축되었던 고영민이 아니었다.
고영민은 주전으로 뛰던 당시 3할-30홈런-30도루를 기록하던 5툴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2할6푼대 후반의 타율과 10개 남짓의 한 시즌 홈런, 30개 이상의 루를 훔치던 2루수다. 그러나 일단 출루하면 두 번 중 한 번은 득점에 성공하며 상대 수비진을 흔들고 후속 타자에게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던 굉장히 좋은 주자였다. 고영민이 넥센 3연전 동안 올린 성적은 9타수 4안타(4할4푼4리) 2타점 2득점 2도루.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상대 허를 찌르며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고영민의 과감한 주루를 다시 볼 수 있던 3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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