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기를 살려줘야 한다".
한화 외국인 투수 션 헨(31)은 요즘 기가 죽어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처음으로 외국에서 '용병' 생활을 하고 있는데 막상 접해본 한국야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션 헨은 지난 14일 대구 삼성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홈런 하나 포함 5안타를 맞고 5실점으로 집중타를 당했다. 이튿날 문학 SK전에서도 결승 2루타를 맞고 승계주자 2명 모두 홈으로 불러들였다. 19일 대전 LG전에서는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한 채 안타-볼넷으로 마운드를 내려가야 했다. 그의 자신감도 점점 떨어져갔다.

하지만 20일 대전 LG전에서 4-1로 리드하던 8회 무사 1루에서 마운드에 오른 션 헨은 좌타자 큰 이병규와 오지환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력을 떨쳤다. 벤치에서 한대화 감독은 양 주먹을 맞부닥치며 정면승부 사인을 냈다. 션 헨이 피하지 않고 타자와 승부할 때마다 1구, 1구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옆에 있던 한용덕 수석코치와 정민철 투수코치에게도 박수를 독려했다.
한대화 감독은 "결국 기를 살려줘야 한다. 션 헨은 마음이 여린 것 같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인지 기가 많이 죽어있더라"며 션 헨의 움츠러든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그래서 그가 마운드에서 스트라이크 하나를 던지더라도 박수를 아끼지 않고 있다. 20일 경기에서 LG가 대타로 우타자 정의윤을 내자 곧바로 좌완인 션 헨을 내린 것도 그가 좋은 기억에서 좋은 흐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한 감독의 속마음과 배려를 알았는지 션 헨은 21일 대전 LG전에서 한국 데뷔 후 최고의 피칭을 펼쳤다. 선발 양훈이 3이닝만 던지고 조기강판된 가운데 4회부터 투입된 션 헨은 오지환에게 안타 하나를 맞았을 뿐 김태군·이민재·이병규(7번)·최영진을 4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2이닝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위력을 떨쳤다. 투구수 30개 중에서 23개가 스트라이크일 정도로 피해가는 피칭이 없었다.
최고 149km 직구와 각도 큰 슬라이더도 좋았다. 그러나 투스트라이크 이후 파울 커트가 7개 될 정도로 약점도 있었다. 파울 커트만 6개를 만들어낸 박용택처럼 정교한 타자에게는 고전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원하는 코스로 제구가 이뤄지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 투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2경기 연속 호투로 자신감도 얻었다.
한화는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데니 바티스타도 주말 3연전부터 부터 엔트리에 등록된다. 선발 대신 중간으로 시작해서 안정감을 찾을 경우 마무리로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션 헨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 감독은 "외국인 투수 2명 모두 중간으로 있는 것이 아쉽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기를 살려서라도 써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션 헨이 벤치의 기를 받고 회생 조짐을 보인 건 한화에 분명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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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