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중단 전후 피어난 이용훈의 '두 차례 미소'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6.25 06: 42

"정훈이 90도 인사를 하더라. 오히려 난 고마운데 말이다".
'퍼펙트 피처' 이용훈(35, 롯데 자이언츠)이 전설의 문턱에서 아깝게 주저앉았다. 이용훈은 24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LG 트윈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8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시즌 7승째를 수확했다.
지난해 9월 퓨처스리그서 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기록했던 이용훈은 8회 1사까지 다시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 프로야구 최초의 1군 퍼펙트게임 기록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그렇지만 결국 최동수에 안타를 허용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이용훈은 안타 2개를 더 내줘 1실점을 한 뒤 8회를 마쳤다.

대기록을 눈앞에서 놓쳤기에 아쉬움이 가득할 법 했지만 이용훈은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했다. 경기가 끝난 뒤 OSEN과의 전화를 통해 이용훈은 "작년에도 퍼펙트를 해 봤지만 이건 정말 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안타를 맞는 순간 오히려 홀가분했다"면서 "퍼펙트를 할 뻔했던 것보다 팀이 승리를 거둬 9연전을 무사히 마치고 부산으로 가는 게 훨씬 기쁘다"고 했다.
특히 이날 눈길을 끌었던 것은 퍼펙트가 깨지던 순간 전후로 이용훈이 보여줬던 두 번의 미소다. 최동수를 맞아 한참 강민호의 사인을 받던 이용훈은 첫 번째 미소를 보였고, 결국 유격수를 스쳐가는 안타를 허용한 뒤 유격수 정훈에 두 번째 미소를 보냈다.
▲ 이용훈, 강민호 보고 웃은 이유
8회 1사 후 최동수를 상대할 때 이용훈은 투구수 90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미 올 시즌 종전 한 경기 최다투구를 넘긴 상황. 1구1구에 혼을 넣어 던지고 있던 이용훈은 체력적 부담이 올 시기였고 백전노장 최동수의 노림수도 고려해야 했다.
초구를 던지기 앞서 이용훈과 강민호가 사인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달리했다. 이용훈은 범타 유도를 위해 슬라이더를 던지겠다고 했고, 강민호는 초구 공략을 우려하며 커브를 요구했다. 여기서 순간 미소를 보낸 이용훈은 슬라이더를 던졌고, 결국 좌전안타로 연결됐다.
이용훈이 갑자기 웃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용훈은 "그 순간 갑자기 민호가 사인을 이상하게 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고 했다. 사정은 이렇다. 강민호는 순간적으로 손가락을 잘못 펴 작년 사인을 냈고 이용훈은 그것을 보고 미소를 보낸 것이다. 이용훈은 "민호가 오히려 나보다 더 긴장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럴만도 했다. 미증유(未曾有)의 퍼펙트게임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불과 5개, 선배가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강민호는 퍼펙트가 무산된 이후 이용훈보다 더욱 아쉬워했다. 이용훈은 "민호가 마운드 올라와서 '정말 아깝다. 그렇지만 선배님은 최고'라고 말하곤 내려갔다. 나도 민호 덕분에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고 후배에 감사 인사를 했다.
▲ 퍼펙트 깨진 순간, 정훈에 미소 보낸 까닭
이용훈의 91구 슬라이더는 최동수의 방망이에 걸려 유격수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유격수 정훈은 쫓아간 뒤 큰 바운드를 맞췄으나 결국 타구는 정훈을 비껴가고 말았다. 퍼펙트게임이 무산된 순간이다.
순간 이용훈은 고개를 뒤로 젖혀 아쉬워했지만 곧바로 정훈에 손가락을 세워 미소를 보냈다. 거기까지 따라간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격려다. 그렇지만 후배 정훈은 선배의 대기록이 자기 때문에 깨졌다는 것에 자책했다고 한다.
이용훈은 "8회 끝나고 정훈이 나한테 와서 90도로 인사하며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기록이 깨졌습니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아니다. 따라간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고맙다"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은 13일 사직 두산전에도 있었다. 부정투구 논란이 있은 뒤 바로 다음 등판에서 이용훈은 5⅔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마운드를 내려갈 때 이용훈은 이날 포수 마스크를 썼던 김사훈을 가리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나중에 이용훈은 "사훈이에게 일부러 그렇게 했다. 어린 선수들은 그런 격려 하나가 큰 도움이 된다"고 당시 행동을 설명한 바 있다. 정훈 역시 1군 출전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선수다.
77년생 이용훈은 투수조 최고참이다. 팀 내에도 선배는 조성환과 홍성흔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팀을 우선시한다. 이용훈은 "오늘 퍼펙트를 할 뻔했기 때문에 기쁜 게 아니다. 내가 좋은 내용을 보여주며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팀원들에게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 버스에 탑승했는데 후배들이 '이용훈! 이용훈!'하며 내 이름을 연호할 때 최고조에 달한 우리 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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