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유로 대회 결승전, 서독과 체코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서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연출됐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기록했던 이 경기에서 서독의 마지막 키커 울리 회네스가 크로스바를 때리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 우승의 기회가 찾아왔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키커는 침착하고 대담한 찍어차기로 골을 성공시켰다. 프란츠 베켄바워가 이끄는 서독을 침몰시킨 이의 이름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신영웅' 안토닌 파넨카였다.
파넨카가 선보인 이 독창적이고 대담한 킥은 이후로 강심장 키커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36년의 시간이 흐른 유로2012 무대에서 바로 이 '파넨카킥'이 다시 한 번 골망을 흔들며 두 팀의 운명을 갈랐다. 대담한 파넨카킥으로 승리를 만들어낸 이의 이름은 안드레아 피를로(33, 유벤투스)였다.

이탈리아는 25일(한국시간) 새벽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로 2012' 8강전에서 대회 첫 연장전을 기록하며 잉글랜드와 0-0으로 비겼다. 하지만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4-2로 이겨 4강에 진출했다.
점유율 63% 유효슈팅수 20개로 잉글랜드에 압도적인 공세를 펼치고도 0-0 무승부를 기록한 이탈리아는 승부차기에서 먼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승부차기에 약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지만 일방적 우세 속에서도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탈리아에 더 큰 불안요소로 작용했기 때문.
양 팀의 첫 번째 키커로 나선 마리오 발로텔리와 스티븐 제라드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1-1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두 번째 키커 리카르도 몬톨리보의 슈팅이 골대를 빗겨나간 데 이어 잉글랜드가 두 번째 키커 웨인 루니의 슛 성공으로 2-1로 앞서가는 순간 아주리 군단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역대 승부차기 전적 2승6패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는 피를로가 있었다. 아주리 군단의 중원을 지휘하는 피를로는 조 하트 골키퍼가 지키는 잉글랜드의 골문을 한 번 바라본 후 침착하고 대담한 칩킥을 성공시켰다. 승부차기의 흐름을 이탈리아로 돌려놓는 멋진 슛이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파넨카킥이었다.
피를로의 슈팅 이후 필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잉글랜드의 세 번째 키커인 애슐리 영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왔고 애슐리 콜의 슈팅은 잔루이지 부폰에게 가로막혔다. 마지막 키커 알레산드로 디아만티의 슛이 골망을 흔들면서 '승부차기 징크스'의 패배자는 잉글랜드가 됐다. 역대 승부차기 전적에 1패를 추가하며 4강 문턱에서 주저앉은 잉글랜드의 앞에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존재감 피를로의 벽이 있었다.
피를로는 이날 승부차기뿐만 아니라 경기 내내 가장 돋보이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몬톨리보와 함께 이탈리아의 중원을 자유자재로 조율했고 딥플레잉메이커로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잉글랜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슈팅은 모두 피를로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넓은 시야로 공간을 확보하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칼날같은 킬패스를 뿌려주며 이탈리아의 창의적인 공격을 만들어 낸 피를로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이날 경기의 MOM이었다.
체력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120분 내내 그라운드를 누비며 중원을 지배하고 승부차기에서 대담한 파넨카킥으로 승부의 흐름을 돌려 이탈리아의 4강 진출을 이끈 피를로는 유로2012를 통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존재감 피를로가 독일전에서 보여줄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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