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김태균 배트에 관한 어필, 그 규정 속으로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06.25 10: 29

덕 아웃 안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김진욱 감독(두산)이 주위에 있던 누군가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평소 어필이 잦지 않았던 감독인지라 그라운드로 걸어 나오는 자체에 시선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
지난 6월 22일 한화와 두산의 경기가 치러진 대전구장에서는 1회 말 2사 2루 때 4번타자 김태균의 중전 적시타로 한화가 선취점을 뽑아낸 직후, 상대팀 감독이 주심에게 다가와 김태균이 사용한 배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모습이 보여 사람들의 궁금증을 한껏 자아낸 적이 있었다.
혹시나 김태균이 공인 받지 않은 배트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그림이었지만, 결론은 배트의 공인여부 문제가 아닌 일명 끈끈이로 불리는 송진가루를 타자가 배트의 손잡이를 넘어 윗부분에까지 묻힌 것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따져 묻는 내용의 어필이었다.

이에 심판진은 직접 김태균이 사용한 배트를 잠시 살펴보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경기를 속개시켰는데, 두산 김진욱 감독이 제기한 문제점에 관해 규칙적으로는 어떻게 해석, 정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야구 배트에 관한 규정을 설명하고 있는 규칙 (c)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배트의 손잡이 부분에는 단단히 잡는데 도움이 되도록 어떠한 물질을 붙이거나 다른 물질로 처리하는 것은 허용된다. 그러나 그 범위가 45.7cm를 넘어선 방망이는 경기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
경기 중 타자들이 배트를 잡을 때 손에서 미끄러지거나 헛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로진백으로 불리는 송진가루 주머니나 고체 상태로 만든 스틱 가드를 배트 손잡이에 대고 문지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방법 사용에 대한 허용규정치를 설명해 놓은 문구이다.
이 규정을 근거로 타석에 들어서기 전, 끈끈이 묻은 손으로 배트 위쪽까지 두루 만져대는 김태균의 일상 습관 때문에 배트 전반에 끈끈이가 묻어나는 사실을 김진욱 감독이 지적하고 나온 것으로, 규칙에 명시가 되어 있는 사항이니만큼 불필요한 어필이라 할 수는 없는 정황이었다.
물론 타자가 공을 때려내는 지점에 고의로 끈끈이를 덧칠해 타구의 성질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페널티가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김태균의 경우, 그러한 고의성과 결부시킬 만한 상황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아울러 손잡이에 바르는 끈끈이가 설사 규정범위를 넘긴 부분까지 발라져 있었다고 해도 규칙적으로는 또 한번의 보호막이 형성되어 있는데, 앞서 말한 규칙 ‘ (c)항에 어긋났다는 사실이 타격 중 또는 타격 종료 후에 발견되더라도 심판원은 그 타자에게 아웃을 선고하거나 경기에서 제외하는 이유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는 [부기]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김태균이 이날 사용한 배트에서 규정치를 벗어난 부분이 일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결론적으로는 중전안타와 1타점이라는 기록의 결과물을 없던 일로 만들기에는 법적인 근거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규정이 부기 형식으로 달린 이유의 배경에는 대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그것은 부정배트에 관한 것으로 규칙상의 끈끈이 허용 범위를 벗어났음에도 기록취소 등의 엄격한 페널티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그 배트가 부정배트가 아니었다는 라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배트란 공인이 되지 않은 배트나 압축배트와 같이 제조에 있어 규정에 어긋난 공정을 가한 배트 또는 공인된 배트라 하더라도 반발력 등을 키우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조, 가공한 배트 등, 해당 리그에서 사용을 불허하고 있는 배트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김태균이 사용한 배트는 일본 미즈노 제품으로 2012년 공인배트로 인정을 받은 회사의 배트였고, 허가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제조 또는 가공된 배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정배트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규정상으로도 배트 윗 부분까지 끈끈이가 묻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부정배트로 간주해 책임을 묻기란 더더욱 불가능했다.
부정배트라면 엄한 중벌이 당연하겠지만 김태균의 경우처럼 정상적인 배트사용 과정에서 무의식적 다소간의 실수로 보이는 현상에까지 법의 칼을 들이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부분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점이 (c)항 [부기]의 탄생배경으로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이는 MLB 야구규칙서 상에도 같은 위치에 Note 형식을 빌어 첨부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프로야구는 2012 시즌이 개막되기 전, 부정배트의 개념과 범위를 놓고 한층 강화된 규정을 채택한 바 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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