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만의 가뭄에 야구계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5월부터 지난 25일까지 서울지역 강수량은 평년의 6.4%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8년 이후 104년 만에 최소 수치다. 논바닥은 갈라진 지 오래고 푸른 물결이 넘실대던 포천 산정호수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예년이었으면 이미 시작됐어야 했을 장맛비도 감감 무소식이다.
프로야구 역시 가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올 시즌 전체 정규시즌 532경기 가운데 24일까지 모두 251경기가 벌어져 47.2%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 가운데 우천 연기된 경기는 17경기. 즉 예정된 일정의 93.7%를 소화 한 셈이다.

4월엔 11경기가 연기되며 지난해와 같이 무더기 경기 연기사태가 벌어지나 싶었지만 5월 3경기, 6월 3경기만 취소돼 근래 들어 가장 정상적으로 정규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작년 같은 날짜까지 전체 32경기가 연기됐던 점을 감안한다면 올 시즌 프로야구의 빠른 일정진행을 짐작할 수 있다.
▲ "극심한 가뭄, 관중 증가로 기뻐할 수만은 없다"
올 시즌 700만 관중돌파를 목표로 내걸었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예년보다 비가 내리는 날이 적어 관중몰이에 도움이 됐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유례없는 가뭄으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기에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24일까지 총 입장관중은 395만 2118명으로 역대 최소경기 400만 관중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26일 255경기 만에 400만 관중을 돌파가 예상된다. 종전 기록보다 52경기 앞선 기록이다. 2007년 전체 입장관중이 410만 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 시즌 프로야구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KBO에 따르면 올 시즌 관중 증가율은 지난해 동일 경기 수 대비 17% 증가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100만, 200만, 300만 관객 모두 역대 최소 경기수로 돌파하고 있다. 경기당 평균 입장관중은 1만 5745명으로 1만 3000명 수준이던 지난해보다 3000명 가까이 늘었다. KBO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년보다 비가 오지 않아 관중 몰이에는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렇지만 전 국민이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 있기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늘어가며 그라운드 상태 유지에도 애를 먹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석면파동 이후 그라운드 흙을 모두 갈았던 잠실·문학·사직 구장은 더욱 심하다. 그라운드 흙을 교체한 후 땅이 단단하게 다져지기 위해선 비가 온 뒤 마르는 과정이 반복돼야 한다. 그렇지만 올 시즌 강수량이 예년의 10% 수준에도 못 미쳐 땅이 다져질 기회가 부족하다. 게다가 늘어난 실책의 주범으로 그라운드 사정이 지목되며 구장을 관리하는 쪽에서는 더욱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 선수들 이구동성 "기우제라도 지내고픈 심정"
쉬지 않고 정규시즌 일정이 진행되며 선수들 역시 지쳐가고 있다. 이번 달 유일하게 비로 3경기가 연기됐던 8일 쉬지 못했던 삼성과 SK 선수들은 각각 47경기와 46경기 연속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삼성 경기가 비로 연기된 건 지난달 1일 대구 두산전이었다.
다른 구단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 시즌 비로 연기된 17경기 가운데 대부분인 11경기가 4월에 몰려 있다. 5월 3경기, 6월 3경기 씩 취소되며 쉴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있는 휴식일인 월요일에 푹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방으로 원정경기를 떠난 경우엔 긴 이동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게다가 25일과 같이 선수협 긴급총회라도 있는 날에는 아예 못 쉴 수도 있다.
이는 결국 부상자 속출로 이어지고 있다. 쉬지 못하는 날이 길어져 피로가 쌓이면 작은 충돌이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최근 성적이 부진한 LG는 이진영, 김태완, 서동욱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이다. 넥센 역시 이택근, 강정호 등 중심타선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 하고 있으며 장기영, 유한준, 정수성 등이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다.
선두 SK는 송은범, 정상호가 1군에서 빠진 가운데 박희수와 정우람까지 지난 주 2군으로 내려갔다. 여기에 마리오 산티아고까지 무릎 부상으로 이탈, 치명타를 맞았다. 롯데는 지난주까지 홍성흔, 문규현이 라인업에서 빠져 있었고 강민호, 김주찬, 전준우 등이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동거리가 긴 지방구단의 한 선수는 "왜 이렇게 비가 안 오냐. 선수들 사이에선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면서 "강행군이 이어져 다들 겨우 버티고만 있는 상황이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내가 빠지면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하니깐 말도 못 꺼낸다"고 간절히 비를 바라기도 했다. 104년 만의 가뭄에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선수들도 하나 둘 지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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