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문 씨, 음악은 공무원 시험이 아니에요
OSEN 김나연 기자
발행 2012.06.26 17: 53

주로 악인, 조폭, 복수의 화신 등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을 주로 맡았던 배우 윤제문이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를 통해 자신의 직업에 200% 만족하며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행복한 구청 공무원으로 돌아왔다.
각종 민원에도 ‘흥분하면 지는 거다’라는 좌우명을 갖고 ‘평정심의 대가’로 살아가는 한 대희(윤제문 분)는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끌어가야 하는 극영화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무 평범해 보인다.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직업은 변화가 없어서 재밌다고 말하는 그는 삶의 어떤 변화도 무덤덤하게 넘기는 심심한 사람. 게다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여자친구 대신 경규형과 유재석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을 10년 째 절친 삼아 살아왔으며, 여자 아이돌 중에서는 2NE1과 아이유을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아저씨에 불과하다.
하지만 안전 지상주의자 7급 공무원 한대희가 좌충우돌 모험주의자 인디 밴드가 만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무원 한대희에게는 이들의 음악이 그저 소음만 발생하는 시끄럽고 쓸모없는 것이지만 ‘삼삼은구’ 밴드 멤버들에겐 인생을 걸고서라도 꼭 해보고 싶은 꿈이자 열정 그 자체이기 때문. 절대로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들은 끝없이 부딪히며 합의점(?)을 찾아가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들이 마주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키득거리게 된다.

인디밴드 이야기를 하며 “내가 그런 애들 좀 알지. 꿈만 먹고 사는 애들”이라며 그들을 폄하하던 한대희가 나중에는 삼삼은구 밴드의 지하 연습실을 수리해주며 ‘다만 난 꿈을 갖고 싶어~’라는 노랫말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는 장면은 영화가 추구하는 아이러니한 웃음코드를 대표적으로 나타낸다. 꿈만 먹고 사는 아이들을 한심하듯 쳐다보던 어른 한대희가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한대희는 그만의 방식으로 꿈을 펼친다. 그는 치열한 공무원 시험을 통과한 책벌레답게 록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책을 밤새 독파해 음악 또한 7급 공무원 시험 준비하듯 정복하려 한다. 늘 대세에 끼기 위해 상식을 꾸준히 업데이트해 온 그는 음악 공부 또한 새로운 상식의 습득이연장선 쯤으로 생각했지만 삼삼은구 밴드 멤버들은 책으로 음악을 배우려는 한대희를 타박한다.
구청 직원들 앞에서 세계 3대 열대어와 세계 3대 맥주 등을 읊으면 교양 있다고 대접을 받지만, 삼삼은구 밴드 앞에서 세계 3대리스트와 레드 제플린과 딥퍼플에 대해 연설을 늘어놔봤자 돌아오는 건 ‘사대주의 쩌는 서양 락덕후’라는 오명(?) 뿐이다. 집 안에 처박혀 있던 LP판들과 기타교본까지 죄다 꺼내 공부하며 어린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록에 빠져 얻은 것은 난청 뿐이라며 투덜대는 한 대희는 윤제문에 의해 ‘귀엽고 사랑스러운 공무원 캐릭터’로 탄생했다.
록의 전설 밥딜런은 한대희의 꿈에 나타나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Things have changed).” 음악을 싫어한다던 한대희는 음악 빼고는 뭐하나 잘 하는 것 없는 청춘인 삼삼은구로 인해 변했고, ‘흥분하면 지는 거다’라던 그가 음악에 제대로 흥분했다. 구자홍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의 원제는 ‘위험한 흥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별의별 민원 전화에 항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친절한 안내를 해야하는 공무원 한 대희가 유일하게 흥분하는 순간을 확인하는 희열이 꽤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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