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시절 ‘국보급 투수’라는 별명과 함께 한·일 프로리그를 지배했던 KIA 선동렬(49) 감독이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을 회상했다.
선 감독은 27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나고야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주니치에서 활약한 것을 바탕으로 지금도 나고야시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며 “나고야가 타 지역 사람들에게 굉장히 보수적인 곳인데 여전히 내 이름이나 얼굴이 걸린 장소들이 많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선 감독은 1996년 11년 동안의 한국 프로야구 활약을 뒤로하고 일본 나고야시가 연고지인 주니치에 입단, 1999년까지 4년 동안 일본 무대에서 뛰었다. 선 감독은 한국 최고의 투수로 일본 언론에서도 입단 첫 해부터 주목을 한 몸에 받았지만 1996시즌 평균자책점 5.50으로 부진, 선수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었다.

당시를 돌아보며 선 감독은 “원래 요미우리도 나를 데려가기 위해 영입 경쟁을 펼쳤었다”면서 “당시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요미우리의 사령탑으로 있었는데 만일 요미우리에 입단했으면 첫 해 부진과 동시에 일본 무대도 끝났을 것이다. 주니치는 내게 2년째 기회를 줬지만 나가시마 감독은 더 이상 나를 기용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라며 주니치 입단이 자신에게 호재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선 감독은 1997시즌 첫 해 부진을 딛고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 당해 세이브 부문 공동 1위를 차지하며 부활을 알렸다. 이후 선 감독은 ‘나고야의 태양’이란 별명과 함께 1999시즌까지 주니치의 소방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 1999시즌에는 11년 만에 주니치가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한국시리즈 우승 6번과 더불어 일본에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한 선 감독은 “당시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나고야에 가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다”며 “주니치에서 잘하니 요미우리와 한신에서도 입단 제의가 왔었는데 그 때 팀을 떠나지 않은 게 주니치 구단과 나고야 팬들에게 호감을 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내게도 나고야가 제2의 고향임 셈이다”고 나고야에서의 추억에 젖었다.
이어 선 감독은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것과 관련해 “리그 우승 순간에 헹가래를 받는 투수가 상당히 의미 있다고 하더라. 1999년에 헹가래도 받아봤고 주니치에서 은퇴경기도 열어줬다”며 “은퇴경기 상대가 요미우리였는데 내가 용병 신분임에도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도열했었다. 특별히 당시 요미우리 최고 타자였던 마쓰이 히데키가 1번 타자로 나오더라”고 현역시절 마지막 순간을 주니치에서 뜻 깊게 보냈다고 말했다.
한편 선 감독은 주니치 4년 동안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했고 은퇴 후 2003년 주니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2004년 삼성 코치, 2005년 삼성 감독 역임을 거쳐 올해부터 친정팀 KIA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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