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여 전 만 해도 코칭스태프 뿐 아니라 구단 관계자들도 포기했던 투수였다. 누구도 모사하기 힘든 빼어난 구위를 갖고도 고비마다 제구난과 마인드컨트롤 실패로 선수 생명 위기까지 맞았던 그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팀의 주축 선발 투수다. 10년차 우완 노경은(28, 두산 베어스)은 그렇게 날개를 폈다.
노경은은 29일 잠실 롯데전에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103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탈삼진 8개, 사사구 4개) 1실점 호투로 시즌 4승(3패)째를 올렸다. 선발로 나선 5경기서 모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이상급 쾌투를 펼치며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노경은이다.
리틀 야구 시절부터 노경은은 ‘역대에 꼽힐 정도로 가장 예쁜 투구폼과 기본기를 갖춘 유망주’라는 평을 받았던 선수다. 성남고 시절에는 ‘야구 천재’로 불리던 유격수 박경수(LG, 공익근무 중)와 함께 팀을 이끌던 에이스였다. 2003년 두산에 1차 우선지명으로 입단할 때까지만 해도 노경은의 야구인생은 승승장구였다.

그러나 이후 수 년 간 노경은은 빛을 못 보고 방황했다. 2004시즌 후 공익근무 입대와 함께 팔꿈치 수술을 하려다 구단과 마찰을 빚고 임의탈퇴 위기까지 몰렸던 노경은이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받고 병역 기간 동안 재활에 힘썼으나 돌아와서 보여준 것은 ‘제구 안 되는 파이어볼러’라는 이미지였다.
김경문 전 감독(현 NC 감독)은 그를 선발로 써보려 무던히도 비시즌 4,5선발 후보로 시험했으나 그의 제구는 번번이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어긋났다. 급기야 2010시즌에는 발목 부상, 허리 부상 등이 겹치며 직구 구속도 140km대 초반에 그쳤다. 야구를 완전히 놓아버릴 수 있던 노경은이 야구를 놓지 않고 버틸 수 있던 존재는 바로 김진욱 당시 2군 재활코치였다. 현재의 김진욱 감독이다.
“저는 김 코치님 믿고 야구할 겁니다. 그 분이 지금 제게는 유일한 희망이에요”. 2010년 12월 팀 선배 손시헌의 결혼식에서 만난 노경은은 대뜸 이 이야기를 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감의 시선을 거두지 않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1시즌 노경은은 계투 마당쇠로 뛰며 44경기 5승 2패 3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5.17로 분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셋업맨 보직에서 선발로 이동해 제 몫을 확실히 해주고 있다. ‘너는 누구보다 뛰어난 힘을 지니고 있으니 이를 바른 자세로 조절하며 던지는 데 힘써라’라는 감독의 가르침에 노경은은 자기 힘을 내뿜고 있다.
경기 후 노경은은 한 명의 스승을 더했다. 바로 포크볼 연마에 힘을 준 정명원 투수코치. 정 코치는 경기 후 노경은에게 "그렇게 좋은 공을 갖고 있으면서 7이닝 1실점 밖에 못 했는데 인터뷰를 하다니"라며 짖궂게 농을 던졌다. 정말 아끼는 제자 중 한 명인 만큼 농 섞인 독설을 뿜은 것이다. 참고로 정 코치는 지난 1996년 현대 시절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서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12월 쯤 정 코치님께서 포크볼을 연마해야 한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하셨어요. 이전까지는 솔직히 직구-슬라이더 투 피치 스타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포크볼을 연마하고 나니 이제는 슬라이더 구사 비율을 쭉 낮출 정도까지 되었네요".
‘사위지기용(士爲知己用)’.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모든 힘을 쏟는다는 뜻이다. 노경은의 휴대전화 메신저 인사말은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던 시간이 아쉽다. 그만큼 이제는 이 팀에서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동료들이 우승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고 오랫동안 뛸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싶다"라는 노경은의 말이 떠오른 29일 선발 쾌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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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