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의 시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다녀온 한그루(24, 대전)의 심경은 과연 어땠을까.
상승세에 있던 대전 시티즌이 지난달 30일 저녁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19라운드 경기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만나 1-3 패배를 당했다. 올 시즌 부산이 한 경기 3골을 터뜨린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하지만 전반 3분 만에 터진 대전 한그루의 자책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날 한그루는 정신 없는 90분을 보냈다. 한 경기에 하나하기도 힘든 일들이 한그루에게 연속으로 일어났다. 비록 좋은 의미에서는 아니었지만 이날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띈 선수는 한그루였다.

한그루는 전반 시작하자마자 3분 만에 자책골을 터뜨렸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코너킥 찬스에서 박종우가 각도 없이 골문 안쪽으로 휘어찬 크로스를 걷어내려던 한그루가 자책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책골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그루는 상대 수비수를 피하는 동작에서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파울을 범했다. 본인도 머쓱한 모습으로 돌아섰다. 자책골을 만회하기 위해 의욕이 앞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한그루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한 것은 전반 31분이었다. 부산 페널티 박스 안에서 김한윤과 몸싸움을 벌이던 한그루는 김한윤에 밀려 그대로 넘어졌고 이것이 파울로 선언되며 대전은 PK를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바바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그루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을 터였다.
전반에 터진 두 골에 모두 관여한 한그루는 후반전에도 정신 없이 뛰어다녔다. 문제는 케빈의 자리를 대신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아쉽게도 인상적인 활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것.
오히려 후반 18분 공중볼을 다투다 핸드볼 파울까지 범하며 경고를 받았고 좋은 위치에서 부산에 프리킥 찬스를 헌납하기도 했다. 자책골에 시뮬레이션 액션, PK 유도에 핸드볼 파울까지 일반적으로 한 경기에 하나 나오기도 쉽지 않은 상황들이 한그루의 발끝에서 쏟아져나온 셈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성남 일화 소속 임대 신분에서 대전으로 완전 이적한 한그루는 192cm의 큰 키에 발재간이 좋은 선수로 '차세대 대형 스트라이커 유망주'로 손꼽힌 선수였다. 대전에 영입된 후 시즌 초반 케빈이 부진할 때 대안으로 여겨졌던 한그루지만 10라운드 울산전서 부상으로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있어야 했다.
아직 데뷔골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는 한그루에게 있어 이날 경기는 악몽으로 남을 듯하다. 그러나 한그루가 대전의 새로운 공격 카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날 경기의 쓰라린 경험을 잊지 않고 와신상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비록 이날은 'X맨'이었다 하더라도, 대전으로서는 장기전이 될 올 시즌 K리그 레이스를 안정적으로 치러내고 강등이라는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그루가 살아나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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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티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