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잡으려고 했고 우정을 버렸다. 어느 순간 파멸의 길을 걸었으며 정신을 차려보니 사랑과 권력을 잃었다. 결국 마지막 순간 우정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안쓰러운 남자, MBC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 차수혁은 한없이 외로운 인물이었다.
배우 이필모(38)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 대화명은 ‘외롭고 또 외롭다’이다. 극중 지독했던 짝사랑 때문일까. 그는 인터뷰 중 자신이 연기한 차수혁이 쓸쓸하고 외로운 인물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첫 방송은 지난해 11월 28일이었지만 첫 촬영은 10월에 했으니 무려 9개월간 차수혁으로 살았다. 드라마 촬영이 끝났는데도 아직 차수혁이라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이필모와 기분 좋은 수다를 떨었다.

‘빛과 그림자’는 그에게 오랫동안 사랑한 여자친구를 떠나보내는 느낌이라고 했다. 인터뷰 시작 전 연애를 하라는 기자의 농담 섞인 재촉에 더운 날씨에 무슨 연애냐고 받아쳤던 그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빛과 그림자’는 이필모에게 체력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힘든 드라마였다. 이는 비단 이필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방송 중반 이후 ‘쪽대본’과 이로 인한 빡빡한 촬영으로 배우들의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시간에 쫓겨서 촬영을 하다 보니 기획의도, 캐릭터와 상관없는 대사와 행동이 툭툭 튀어나왔다.
“64회가 방영되는 동안 정말 아무 사고 없이 끝나서 다행이에요. 이제 앞으로가 문제죠. 차수혁을 연기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과 정신을 어떻게 수습할지가 걱정입니다.”
차수혁은 안쓰러운 인물이었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인물이었다. 만신창이가 됐다는 그의 표현은 충분히 그럴 만 했다.
그는 “어느 날부터 실제로 몸이 아팠다. 병원에 가서 내시경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뇌하고 삭히는 차수혁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내 안에 종양이 자라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면서 차수혁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필모가 털어놓는 드라마에 대한 오해

차수혁은 친구 강기태(안재욱 분)를 배신하고 죽음까지 몰아넣으려고 했던 죄를 씻기 위해 장철환(전광렬 분)을 총으로 죽였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차수혁이 자살하는 결말은 아니었다.
“원래 대본대로라면 장철환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의 총에 맞고 죽는 것이었어요. 저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수혁이 경호원의 총에 맞고 죽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을 했죠. 최완규 작가님과 전화로 계속 조율을 해서 최종적으로 자살로 결론을 내렸어요.”
처음부터 차수혁의 자살을 생각한 것이 아니었기에 소품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머리에서 피가 나오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특별 조치가 필요한데 현장에서 불가능했던 것. 덕분에 이필모의 매니저가 필요한 물품을 구하느라고 뛰어다녔다.
이필모는 차수혁의 자살이 차수혁다운 선택이었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쓸쓸한 차수혁의 인생을 대변하듯이 조용한 강가에서 마지막을 장식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게 차수혁으로 9개월을 살았던 그의 생각이다.
‘빛과 그림자’는 당초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엔터테인먼트 업계 거장으로 성장하는 한 남자의 성공을 다루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중반부 이후 역동적인 현대사에 초점이 맞춰졌고 기획의도가 퇴색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필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시대극이었기 때문에 정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최완규 작가님이 굵직한 현대사를 다루는 과정이 좋았다”면서 “밝고 경쾌한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시대를 표현하는 드라마라서 출연을 결정했다. 처음부터 엔터테인먼트 업계 이야기는 가볍게 다루고 정치 이야기가 많이 그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강조했다.
차수혁은 우정 대신 사랑을 선택했다. 그에게 우정과 사랑 중 무엇이 먼저냐고 물었더니 재밌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는 우정이었죠. 여자는 무슨,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친구가 먼저였죠. 그런데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더니 저를 버리더라고요. 친구와 오랜만에 회포를 풀려고 소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아내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가더라고요.(웃음)”
드라마를 끝낸 이필모는 당분간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차기작에서는 정말 하고 싶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독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면서 “필요하다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다. 머리카락을 밀어야 한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밀 것”이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소위 센 역할만 하고 싶다고 하는 배우 이필모에게 로맨틱 코미디는 할 생각이 없느냐고 의중을 물었다. 유머러스한 이 남자는 이렇게 답했다. “상대 배우 보고 결정할게요.(웃음) 예쁜 배우면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필모가 생각하는 예쁜 배우는 김희선, 한예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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