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과 사재혁의 닮은 듯 다른 '金빛 동행'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07.20 15: 29

"금메달리스트라는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도전할래요"(장미란).
"여러분, 역도에 장미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재혁도 있습니다"(사재혁).
20kg의 바벨에 매달린 디스크의 무게는 원래의 중량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단단히 거머쥔 바벨을 있는 힘껏 들어올려 머리 위로 올리는 순간 땀방울이 경기대에 흩뿌려졌다. 기합 소리가 체육관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내던진 바벨이 구르는 소리가 역사(力士)들을 서로 독려한다.

지난 달 27일, 30일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한창인 태릉선수촌의 훈련 현장이 언론에 공개됐다.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22개 종목 240명의 선수단 가운데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사격 및 수영 대표팀을 제외한 11개 종목 선수들이 런던의 영광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유례 없이 뜨거운 취재 열기로 가득한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종목 중 하나는 사상 첫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역도였다. 시종일관 우렁찬 기합소리가 터져나오는 역도장을 찾아 런던올림픽 금빛 동행을 시작하는 장미란과 사재혁을 만나봤다.
▲ '올림픽 첫 메달의 기억' 약속의 땅 런던
한국 역도에 있어 런던은 특별한 기억이 남아있는 약속의 땅이다. 런던올림픽 D-30 기자회견을 개최한 이기흥 런던올림픽 선수단 단장은 "1948년 올림픽 처녀 출전 이후 64년 만에 치르는 런던올림픽이다. 한국은 그동안 도저히 안 될 것이라고 여겼던 수영과 피겨에서 박태환 김연아 같은 선수들이 나오며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왔다"고 감회를 밝혔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열린 1948년 런던올림픽은 한국이 최초로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앞세워 출전한 첫 하계올림픽이다. 한국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올림픽 참가국 명단에 이름을 올린 뜻깊은 대회인 것.
바로 이 대회에서 한국에 첫 메달을 안긴 종목이 역도다. 처녀 출전에도 불구하고 김성집(93) 현 대한체육회 고문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추상 122.5kg의 올림픽 신기록을 쓰며 미들급에서 3위에 올랐다. 이처럼 한국에 역사적인 동메달을 안긴 대회가 바로 1948 런던올림픽이다.
한국 역도사의 기념비가 될 김 고문의 동메달 이후 64년 만에 다시 한 번, 한국 역도 대표팀은 런던에서 새로운 역사에 도전한다. 그 선두에 서있는 이들이 한국 역도 사상 첫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장미란과 사재혁. 런던이 더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는 두 역사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 최선을 다하는 최고, 장미란
"챔피언도 도전자 아닌가요. 나도 도전자다, 그런 마음으로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도전할래요".
누구나 인정하는 '역도 여제'다. 그러나 장미란(29, 고양시청)은 겸손히 고개를 저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영광을 맛봤지만 도전자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장미란의 말은 무게감이 있었다.
분명히 쉽지는 않은 도전이다. 더구나 기대가 크기 때문에 부담도 크기만 하다. "가장 먼저 메달을 획득한 종목이기 때문에 자부심이 남다르다"고 감회를 밝힌 장미란은 "2012년 런던올림픽은 지난 베이징 때보다 부족한 부분도 어려운 부분도 많다. 메달을 따겠다는 말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현재 장미란의 몸상태는 100%가 아니다. 계속 잔부상에 시달려왔던 데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왼쪽 어깨도 누적된 피로로 인해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그러나 김순희 코치는 "올림픽을 3번 치르는 만큼 경험이 있다. 변수를 컨트롤할 수 있는 노련미가 있다는 뜻이다"라며 "(장)미란이가 2008년에 근력과 파워, 신체조건을 갖췄다면 지금은 노련미와 멘탈을 갖추고 있어 기대할 만하다"고 장미란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3번째 올림픽을 맞이하는 장미란은 역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장미란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 것이 역도라면,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무대는 올림픽일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장미란은 메달에 욕심을 두기보다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좋은 결과를 바라시겠지만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고 있어요"라는 장미란의 말에는 자신의 모습 자체를 아껴주고 응원해주는 팬의 존재가 있음에 행복한 역사(力士)의 기쁨이 담겨있었다.
▲ 역도 2연패 기대주, '사재혁'도 있다!
"여러분, 역도에 장미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재혁도 있습니다".
넉살 좋게 웃으며 던진 농담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사재혁(27, 강원도청)은 긴장을 모르는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사재혁은 이번 2012 런던올림픽에서 장미란, 사격의 진종오(33, KT), 배드민턴의 이용대(24, 삼성전기)와 함께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다. 사재혁은 "나에게 슬럼프란 없다"고 외치며 런던을 향한 바벨을 힘차게 들어올리고 있다.
런던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재혁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 사재혁은 "운동할 때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다. 슬럼프라는건 곧 (상태나 성적이)하락한다는 뜻인데 나는 부상당했을 때 빼고는 그랬던 적이 없다"며 슬럼프 없는 꾸준함을 자랑했다.
사재혁이 유일하게 성적이 떨어졌을 때는 부상을 당했을 때다. 그래서 사재혁은 "부상이 곧 슬럼프다"라고 이야기한다. "운동할 때가 제일 좋다"는 것이다. 천상 운동선수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는 사재혁의 마음은 평온하다. 물론 그 역시 이번 올림픽이 한국 역도에 있어 대단히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48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첫 메달이 역도에서 나와서 더 의미가 깊다. 의미가 깊은 런던에서 역도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들이 그 기운을 받아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긴장도 되지 않고 (오히려)편한 것 같다"던 사재혁은 자신이 라이벌로 꼽은 중국의 루샤오쥔과 아르메니아의 티그란 마르티로시안에 지지 않는 열정과 패기를 아직 그 몸 안에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지난달 평택에서 열린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서 체력 관리를 위해 체중 감량 없이 85kg급으로 체급을 바꿔 출전했던 사재혁은 바벨을 들어올리며 "아, 한 번 더 올림픽 나가도 되겠는데" 싶었다고 한다. "한국 역도에는 장미란뿐만 아니라 사재혁도 있다"고 농담을 던질 만큼 자신감 넘치는 사재혁다운 말이다.
한국 역도를 지탱하는 든든한 두 기둥, 장미란과 사재혁의 금빛 동행이 1948 런던올림픽 한국 첫 메달의 영광에 이어 64년 만에 다시 한 번 런던에서 당찬 신기록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보고 싶다. 부담의 무게마저 바벨에 얹어 가뿐히 들어올릴 그들을 위해, 런던을 향한 그들의 금빛 동행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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