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의 시작은 야구공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단련된 타자라 하더라도 몸 쪽으로 바짝 붙는 공이 날아오면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
투구에 얼굴을 맞았던 한 선수는 "약점을 노출하고 싶지 않아 티를 안 내려 하지만 공에 대한 공포는 오래갔다. 극복하는데 6개월은 걸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의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자신의 저서 에서 '타격의 시작은 공에 대한 공포심을 어떻게 극복 하는가가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KIA 나지완과 두산 프록터 사이에서 벌어졌던 실랑이는 타자들이 투수들의 위협구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타자가 머리 쪽으로 공을 던진 투수에 화를 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투수는 이를 역이용해 타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150km로 날아오는 무게 150g의 야구공에 맞았을 때 타자가 받는 충격은 어떨까. 여러 변인에 따라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28kg의 물체가 1m 높이에서 떨어질 때의 충격과 같다고 한다. 충분히 사람의 뼈를 부수고도 남는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선 1920년 레이 채프먼이 투수 칼 메이드의 투구에 맞아 두개골 골절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몸에 맞는 볼도 전략이다
올 시즌 몸에 맞는 볼 1위는 삼성 박석민이다. 박석민은 벌써 17번 공에 맞아 이 부문 2위 최정(10개)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대략 4경기당 한 번 꼴로 몸에 맞는 볼을 기록 중인 박석민은 만약 사구가 하나도 없었더라면 시즌 출루율은 4할2푼6리에서 3할7푼1리로 뚝 떨어진다.
박석민은 사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표적인 선수다. 투혼을 불태웠던 2010년 포스트시즌에선 5개의 사구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박석민은 "방망이도 못 치는데 맞고서라도 나가야 한다"고 전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올 시즌도 박석민은 타석에서 몸 쪽으로 공이 날아오면 몸을 슬쩍 돌려 최대한 피해가 적은 곳에 골라 맞기도 한다.
몸에 맞고서라도 출루하면 득점 기회가 생긴다. 박석민이 사구를 기록했던 17번의 상황 가운데 16번이 3점차 이내 접전이었다. 또한 주자가 나가있는 경우는 8번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박석민이 사구를 기록한 이닝에 삼성은 총 7번 득점에 성공했으며 본인은 5번 득점을 올렸다. 17번 나가 득점을 올린 비율이 3할에 가까우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실제로 투수들은 사구가 나오면 더욱 제구가 흔들리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번 몸에 맞추면 다음 타자를 상대할 때 쉽사리 몸 쪽 승부에 나서기 힘들다. 한화 박찬호와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도 5월 29일 삼성전에서 한 이닝동안 3개의 사구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 사구에 박석민도 포함 돼 있었다.
▲ 외국인 투수 "이해할 수 없다"
외국인 선수들은 사구와 관련, 한국 선수들과 많은 부분에서 생각의 차이를 보인다. 사구를 던진 뒤 모자를 벗어 사과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공에 몸을 가져대는 타자의 행위에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롯데 사도스키는 몸에 공을 가져다대는 타자들과 몇 번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0년엔 LG에서 뛰던 이택근이 팔을 슬쩍 가져다대려 하자 이를 지적하기도 했고 올해엔 넥센 지재옥과 비슷한 일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은 학생 때부터 사구는 곧 투혼이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한 선수는 "고등학교 때 안 아프게 공에 맞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몸에 맞는 볼로 나가는 것도 이기기 위한 전략의 하나였다. 그게 팀을 위한 희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 외국인 선수는 이 말을 듣고선 "몸을 가져다대는 건 자살행위다. 자신의 몸은 재산과도 같은 데 스스로 위험에 노출시키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지도자가 학생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자격 미달"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몸에 맞는 볼로 다치는 선수는 매년 빠지지 않고 나온다. 롯데 이진오 수석 트레이너는 "공에 맞아서 다행히 타박상으로 그쳤다 하더라도 그 부위가 낫기 까지는 최소 2주가 걸린다"고 설명했다. 일단 한 번 맞으면 타자는 2주 동안 고통과 싸워야 한다. 2주간의 고통과 팀 승리 사이에서 벌어질 찰나의 고민은 앞으로도 타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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