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내가 불쌍해 보였나봐".
지난 7일 대전구장 트레이너실. SK와 홈경기를 앞둔 한화 선발투수 박찬호(39)는 산소통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등판 준비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 트레이너로부터 어깨 마사지를 받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졌다. 한대화(52) 감독이었다. 이날 박찬호는 6이닝 5피안타 1볼넷 1사구 4탈삼진 2실점 역투로 팀의 8연패를 끊어냈다.
그는 "경기 전 감독님께서 트레이너에게 어깨 마사지를 받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겠나. 감독님의 그런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며 "우리팀 모두가 힘들겠지만 어느 누구보다 힘들고 아픈 게 감독님이실 것이다. 감독님 모습을 보며 죄송했고, 더욱 잘 던지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박찬호의 4승은 한대화 감독을 위한 선물이었다.

이튿날 박찬호의 이야기를 들은 한대화 감독은 "허허, 내가 불쌍해 보였나봐"라며 웃음을 지었다. 선수가 감독을 생각하고 위하는데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한 감독은 "원래 어깨가 좋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많이 뭉쳐있어서 마사지를 받았다. 웬만하면 선수들이 있는 데에서는 마사지를 받지 않으려 하는데 찬호가 갑자기 산소통에서 부스럭거리며 나오더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한 감독은 지난 주중 목동구장에서도 선수들이 모두 훈련을 나간 사이에 트레이너실에서 어깨 마사지를 받았다. 누구보다 힘들고 감내해야 할 것이 많은 한 감독이지만, 적어도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감독으로서의 고뇌는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게 숙명이다. 선수단의 맏형 박찬호가 한 감독의 모습을 보고 더 전의를 다졌지만 그래도 한 감독은 "이제 마사지 안 받아야겠다"며 숙명을 짊어졌다.
오히려 한 감독은 박찬호의 몸 상태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박찬호는 이날 4회 임훈에게 초구를 던진 뒤 허리를 부여 잡고 숙이며 통증을 호소했다. 다행히 허리를 삐끗한 수준으로 큰 이상 없이 이날 경기를 잘 마쳤지만 한 감독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감독은 "찬호가 아프다고 했을 때 나도 놀랐다. 처음에는 팔이 아프다는 줄 알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찬호는 "허리는 괜찮다. 컷패스트볼(커터)을 조금 더 꺾어서 던지려다 보니 허리를 잠깐 삐끗했다. 가끔 무리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며 웃었다. 팀이 어려울 때마다 직접 연패를 끊고 돌파구를 마련하는 박찬호의 몸 상태는 한 감독에게 자신의 몸보다 더 중요했다. 박찬호도 그런 한 감독을 위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감독을 위해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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