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지난 8일 대전구장. SK와 홈경기를 5-0 영봉승으로 장식한 한화 덕아웃은 오랜만에 웃음이 넘쳐났다. 에이스가 승리하고, 4번타자가 홈런 2방을 뿜어낸 날이라 더욱 그랬다. 경기 후 류현진은 김태균에 대해 "1경기에 하나씩만 쳐주면 좋을텐데 왜 2개나 쳤는지 모르겠다"며 농담을 던졌다. 이에 김태균은 "현진이가 자기를 위해 친 건 줄 아나 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난 팀을 위해 친 것일 뿐"이라며 가볍게 응수했다.
하지만 김태균은 그동안 류현진이 겪은 마음고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류현진이 가장 따르는 형으로서 동생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큼 괴로운 것도 없었다. 그는 "원래 현진이는 안타나 홈런을 맞아도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올해는 현진이답지 않게 표정에서 나타났다. '멘붕(멘탈붕괴)'이 왔었는데 이제 이겼으니 잘 극복하고 남은 경기 전승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나 덕담은 여기까지였다. 김태균은 "현진이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며 "다른 것 바라지 않는다. 오늘(8일)처럼 점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는 유독 경기 초반에 1~2점씩 꼭 줬다. 현진이라면 한 점도 주지 않아야 한다. 현진이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선수라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장난기 섞인 말이었지만 그 속에 류현진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김태균의 말대로 류현진은 올해 14경기 중 무실점 경기가 3경기밖에 없었다. '3경기밖에'라는 표현도 그 대상자가 류현진이기에 쓸 수 있는 표현. 올해 류현진은 14경기 중 선취점을 내준 게 6경기이고, 팀이 득점을 올린 바로 다음 이닝에 실점한 게 4차례였다. 또한, 리드를 못 지키고 동점 또는 역전을 허용한 것도 4차례 있었다.
모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나와서 0점으로 막고 못 이긴 날도 있었다. 전체적인 류현진의 성적은 분명 좋다"고 전제한 뒤 "올해 류현진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류현진이라면 타자들이 도와주지 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 타자들을 돕고 팀을 살려야 한다. 한화의 에이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팀이 1점 내면 1점도 주지 않고, 팀이 2점을 내면 1점만 주는게 바로 류현진다운 모습이 아니겠나"고 강조했다.
이어 "류현진을 놓고 불운이라고 많이 말한다. 하지만 다른 투수도 아니고, 류현진이라면 이 상황을 뒤바꿔야 한다. 타자들이 1점을 냈을 때 1-0으로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류현진이 필요하다"며 "류현진이 삼성에 있었다면 20승을 했을 것이라 말하지만 그건 류현진이 진짜 삼성에 있을 때 말이다. 류현진은 지금 한화 소속이고, 한화에서 이길 수 있는 야구를 해야 한다. 조금 더 집중하고 신경쓰는 게 절대 쉬운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이기는 투수가 되어야 하는 게 류현진"이라고 말했다.
김태균도 슬며시 윤석민(KIA)의 이름을 꺼냈다. 그는 "석민이는 완봉도 잘 하던데"라며 은근히 류현진의 승부근성을 자극했다. 실제로 윤석민이 최근 2년간 4차례 완봉승하는 동안 류현진은 완봉승이 없다. 8이닝 무실점으로 완봉 기회였던 SK전에서 류현진은 "완봉을 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투수를 자주 바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만 던지기로 했다"며 내심 아쉬워했다.
류현진의 마지막 완봉승은 지난 2010년 7월21일 대전 롯데전으로 당시 9이닝 동안 108개 공을 던지며 5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화는 1-0으로 이겼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삼진의 제물은 지금 일본에 있는 오릭스 4번타자 이대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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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