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km를 쉽사리 넘나드는 '돌직구' 삼성 오승환은 이제 마무리 투수의 표본처럼 굳어졌다. 오승환 뿐만 아니라 지난해 한화 데니 바티스타, 올 시즌 두산 스캇 프록터 등 정상급 마무리 투수들은 빠른 구속을 갖추고 있다. 위기 상황에 등판해야 하는 마무리투수는 운이 개입될 수 있는 '맞춰잡기' 식 피칭보다 삼진을 빼앗는 게 가장 확실한 투구법이다. 그렇기에 '마무리 투수=강속구' 같은 등식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투수의 임무는 타자를 잡아내는 것. '흑묘백묘(黑猫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구속과 관계없이 투수는 타자를 이겨내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점에서 롯데와 KIA의 뒷문을 책임지고 있는 김사율(32)과 최향남(41)은 마무리 투수로서 '느림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프록터와 세이브 공동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김사율은 올 시즌 29경기에서 1승 2패 21세이브 평균자책점 3.21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 투수로서는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20세이브를 달성하는 위업을 세우기도 했다. 30년의 롯데 구단 역사상 김사율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마무리 투수는 있었어도 그보다 안정적인 마무리 투수는 없었다.

그의 직구 최고구속은 140km 초반대다. 어떤 날에는 140km가 채 안 나오는 공으로 경기를 마무리짓기도 한다. 빠른 구속대신 포크볼, 커브 등 낙차 큰 변화구와 '칠 테면 쳐 봐라' 식의 과감한 승부로 타자들을 요리하낟.
그런 김사율도 구속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고 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사율은 "마무리투수 하면 오승환과 같이 강속구가 필요하지 않나. 나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 내가 구속을 끌어올리려 무리하면 선수생활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내 장점을 살리겠다"고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주춤했던 지난 5월 김사율은 인터넷 댓글을 읽으며 '내 구속이 정말 너무 느린 것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다. 한동안 고민을 했지만 김사율은 '135km를 던지면 어떤가. 타자가 못 치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바꿔 가졌고 결국 팀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 됐다. 김사율의 세이브 행진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향남이야 말로 느린 공으로 타자들을 마음껏 농락하고 있다. 테스트를 통해 시즌 중반 합류한 최향남은 8경기에 등판, 2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점 제로를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8이닝 동안 탈삼진 10개, 피안타율 2할7리, 이닝 당 출루허용(WHIP) 0.75 등 세부 성적도 나무랄 데 없다.
최향남의 직구 최고구속은 135km 수준에 머문다. 그렇지만 타자들은 헛방망이질을 하기 일쑤다. 그의 '영업비밀'에 대해 KIA 선동렬 감독은 볼을 감추고 던지는 투구 폼을 우선으로 꼽았다. 베테랑 투수답게 타자들의 타이밍 빼앗기에 능한 것. 여기에 빠른 템포의 투구로 자신의 페이스대로 공을 던진다. 워낙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기에 1이닝을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다. '향운장'이라는 별명처럼 벤치에 떠다 놓은 더운 물이 식을 새가 없다.
KIA와 롯데의 광주 주중 3연전 가운데 두 경기는 비로 연기돼 두 마무리투수가 등판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이미 주전 마무리로 자리 잡았기에 예전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둘이 마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과연 3연전 마지막 날 등판해 '느림의 미학'으로 승리를 지켜낼 투수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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