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 버리는 돈이..', 쪽대본 폐해 어쩌나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2.07.12 17: 25

국내 드라마의 고질적 문제인 '생방송 제작'이 여전히 난무하고 있다. 현재 지상파에서 방송 중인 평일 미니시리즈나 주말극, 연속극 등 대부분이 드라마들이 심하면 첫 방송 한두 달 전에서야 첫 촬영을 시작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본격 방송이 시작되고 나면 촬영과 편집상 스케줄이 빠듯해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현재 수목극 1위를 달리고 있는 KBS 2TV '각시탈'이나 상반기 종영한 KBS 2TV 월화드라마 '사랑비'가 비교적 오랜 사전 제작 기간을 갖고 꽤나 여유분을 확보한 채 방송에 들어갔음에도 불구, 두 작품 역시 방송 초반 이후 이른바 '생방' 모드로 돌입한 것만 봐도 드라마 제작 환경이 얼마나 각박한지 가늠케 한다.
'생방송 제작'이란 드라마가 거의 생중계 방식으로 촬영, 편집돼 전파를 타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인기 드라마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극심하다. 최악의 경우 방송을 불과 3시간 남짓 남겨둔 시점까지 촬영이 이어지고 부랴부랴 편집을 마쳐 허겁지겁 방송 시간을 맞추는 일도 허다하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은 까맣게 속을 태우며 촬영 테이프를 운반하느라 묘기 대행진에서나 볼법한 질주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생방' 모드는 작품의 질을 저하시키고 완성도에 흠집을 낼 수밖에 없다. 시간에 쫓긴 배우들 역시 연기에 몰입하기 어렵고 연출 입장에서도 더 좋은 컷을 얻기 위한 기회를 박탈당한다. 출연진과 스태프의 피로도 역시 극심하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2시간 쪽잠을 자고 링거 투혼을 발휘하는 배우들의 소식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드라마가 이토록 궁지에 몰려 제작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쪽대본'이다.
'쪽대본'은 말 그대로 1권의 온전한 대본의 형태가 아닌 짧은 대본을 일컫는다. 1회분에 대한 전체 대본이 한 번에 나오는 게 아니라 중간에서 잘려있고 나머지 부분이 완성되는 대로 급하게 전달된다.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촬영장으로 도달하지만 문제는 그 시점이 촬영 당일이라거나 촬영 직전이라는 점이다. 배우는 대본 연구를 하고 대사 암기를 할 시간도 허락되지 않은 심각한 상황에 놓이는 것. 또 드라마 방송 중간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작가나 연출진이 당초의 시놉시스와 다르게 대본을 바꾸거나 새로운 내용을 삽입하는 등 변화무쌍해지는 것이다.
결국 '쪽대본'의 폐해는 단순한 작품의 질 저하를 넘어 돈과 시간 등 물질 낭비로도 나타난다. 현재 방송 중인 한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출연 중인 모 배우의 소속사 한 관계자는 최근 OSEN에 "서울에서 차로 4시간 이상 걸리는 지방에서 촬영을 시작한다. 그리고 오후엔 서울에서 촬영해야 하는 신이 잡혀 다시 상경한다. 하지만 밤에는 다시 아침에 촬영을 시작한 지방에서 촬영 스케줄이 잡힌다"며 "대본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촬영 스케줄이 뒤엉켜버리는 것이다. 결국 배우와 그에 따른 스태프 여러 명이 비효율적인 이동과 노동을 하게 되는 셈이다. 차량 유류대 등 유지비, 배우와 스태프의 식대와 숙박비 등 예상보다 몇 배 많은 진행비가 소비될 수밖에 없다"며 한탄했다.
하지만 '쪽대본'이 탄생하는 것조차 작가의 역량 문제라고만은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생방'은 드라마 제작 구조의 모순과 유기적으로 엮여있는 주체들의 공동 책임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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