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닝이 가까워오거나 넘어갔을 때 구위가 뚝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한국에서. 그것도 이미 바티스타가 있는 한화에서 선발로 제대로 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2회까지는 무실점으로 괜찮았다. 그러나 3회가 되자 구위도 제구도 상대의 날카로운 창을 꺾기 힘들 정도로 무뎌졌다. 한화 이글스의 좌완 션 헨(31)은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까.
헨은 12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로 나섰다. 브라이언 배스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지난 6월 한국 땅을 밟은 이래 12경기서 계투(1홀드 평균자책점 7.71)로만 등판했던 헨은 12일 두산전이 첫 선발 등판이었다. 경기 성적은 3이닝 62구 4피안타(탈삼진 3개, 사사구 1개) 3실점으로 초라했고 팀이 2-9로 패하며 패전의 책임은 헨에게 돌아갔다.

초반은 괜찮았다. 1회 헨은 허경민에게 좌전 안타를 허용하기는 했으나 손쉽게 직구가 150km를 넘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2회에도 탈삼진 두 개 포함 삼자범퇴로 뛰어난 구위를 보여준 헨이었다. 이날 헨의 최고 구속은 152km였다.
문제는 3회였다. 2-0으로 앞선 3회말 정수빈을 상대로 볼과 스트라이크가 큰 편차를 보이며 흔들린 끝에 볼넷을 내준 헨은 김재호를 상대로 우중간 1타점 안타를 내주며 첫 실점을 기록했다. 직구 구속도 어느새 140km대 중반으로 뚝 떨어졌고 공도 높거나 몰렸다. 결국 헨은 김현수에게 2타점 우전 안타를 맞으며 역전점을 내주고 김광수에게 마운드를 물려줬다.
사실 헨은 선발보다 계투 특화에 가까운 선수생활을 보낸 투수다. 헨의 가장 최근 선발 등판은 2010년 라스베거스(토론토 산하 트리플A)에서 9경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헨은 트리플A에서 계투로만 58경기를 등판했다. 비시즌 동안 투수가 선발로 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한계 투구수를 늘려놔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헨의 선발 등판은 모험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 관계자는 한화의 헨 영입 당시 "한화가 설마 헨을 선발로 쓰려는 것인가"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올 시즌 시애틀 산하 트리플A 타코마에서 뛴 헨은 15경기 모두 계투로 등판했다. 여기에 2이닝 이상 되었을 경우 구위가 뚝 떨어졌다는 것이 관계자의 제보였다.
"프레스노(샌프란시스코 트리플A)와의 경기에 헨이 계투로 등판한 적이 있었는데 2이닝까지는 거의 완벽했다. 그러나 2이닝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구속도 뚝 떨어지고 공이 몰려 결국 상대에게 통타 당하더라. 그 날만이 아니라 다른 경기서도 투구수가 많아졌다 싶으면 결국 위력을 잃었다. 헨리 소사(KIA)와 헨을 놓고 고심했다던데 한화의 선택이 과연 좋은 쪽으로 흘러갈 수 있을까". 4월 23일(한국 시간) 프레스노전서 헨은 3⅔이닝 동안 5피안타 1피홈런 3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분명 헨은 아까운 구위를 지닌 선수다. 2회말 2사에서도 헨은 윤석민의 몸쪽에 붙이는 스트라이크로 삼진을 잡아냈다. 간결한 투구폼으로 150km 이상의 직구를 던질 수 있는 좌완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이미 한화는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를 보유한 팀이다. 두 명으로 한정된 외국인 선수 보유 제도 하에서 또 한 명의 외국인 투수가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로 나서는 것은 굉장히 희귀한 일이다.
빠른 공을 갖춘 외국인 투수. 그러나 선발로 쓰기는 위험성이 많다. 대다수의 등판을 선발이 아닌 계투로 치른 데다 구종도 단조롭다. 다니엘 리오스, 이리키 사토시의 전례를 따르지 못한 헨은 '계륵'으로 전락할 가능성만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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