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시절의 발목 골절상. 그러나 이는 단순한 골절상이 아니라 발목이 거의 으스러졌던 부상이다. 다행히 선수생명은 이어갔으나 프로 생활 동안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혔던 부위다. SK 와이번스 우완 박정배(30)가 아픔을 딛고 새 소속팀에서 움츠렸던 어깨를 다시 활짝 펴고 있다.
박정배는 지난 13일 문학 두산전서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3피안타(탈삼진 2개, 사사구 1개) 무실점으로 데뷔 후 최고의 호투를 보여주며 데뷔 첫 선발승을 거뒀다. 특히 지난 시즌 후 자신을 방출한 데뷔 팀 두산을 상대로 거둔 선발승이라는 점은 더욱 의미가 깊었다.
공주고-한양대를 거쳐 2005년 2차 6라운드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박정배는 대학 3학년 시절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낙상으로 인해 왼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한 것. 단순 골절이 아니라 거의 뼈가 완전히 조각났던 부상이다. 당시 최고 구속을 147km까지 끌어올리며 프로 입성의 꿈을 꿨던 박정배에게는 치명적인 사고였다.

다행히 프로 지명을 받으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으나 그는 두산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한 어깨를 갖췄으나 수술 전력의 왼 발목이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볼 끝이 약하다는 단점을 지적받았다. 제구도 들쑥날쑥했고 몰리는 공은 1군에서 통타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두산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진욱 감독은 물론이고 김경문 전 감독(현 NC 감독)도 박정배의 성실함을 높이 샀다. 그러나 투구 밸런스가 일정하지 못해 1군에서 중용되지 못했다. 지난 시즌 중 박정배에게 전력 분석원 자리를 권유했던 두산은 시즌 후 박정배를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에 참가시켰다. 일말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것이었으나 2차 드래프트에서도 박정배의 이름은 타 구단으로부터 불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배는 자유계약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저 마무리훈련 도중에 돌아왔어요. ‘삐꾸’되는 바람에요”. 마무리훈련 중 방출이라는 비운 속 박정배는 애써 웃음을 지었으나 선수로서 제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 사실. 다행히 SK의 테스트에 합격하면서 박정배는 우여곡절 끝에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시즌 초에도 박정배의 페이스는 그리 좋지 않았다. 좋은 공을 갖고 있는 만큼 전지훈련서 선발 후보군으로도 꼽혔으나 시즌 초 허벅지 통증으로 인해 잠시 재활군에 다녀오기도 한 박정배다. 6월 들어 다시 1군 마운드에 오른 박정배는 현재 13경기 35⅔이닝 2승 2패 평균자책점 2.78(14일 현재)을 기록 중이다. 프로 6시즌(공익근무 2년 제외) 동안 가장 좋은 성적이다.
경기 후 박정배는 “치라고 던졌는데 쳐서 많이 아웃됐다. 실투도 많았는데 수비의 도움이 많았다”라며 공격적 투구를 자평한 동시에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밝혔다. 두산 시절 밸런스 붕괴 이전에 스스로의 긴장감으로 인해 경기를 그르치는 일도 잦았던 박정배는 SK 이적 후 강심장으로 바뀌었다.
“가족들이 TV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딸 가율이가 생각났다. 기복이 심한 편인데도 감독님과 투수코치님이 믿어주셨고 같이 두산에서 오신 김태형 배터리 코치님도 격려해주셨다”. 2년 전 아이의 돌잔치 때 “제 스스로 잘 해서 가장 노릇을 해야할 텐데”라며 쓴웃음을 짓던 박정배는 비로소 당당한 아버지로서 호투를 펼쳤다.
프로 8년차 시즌 만에 처음으로 거둔 선발승은 단순한 1승이 아니다. 발목 수술 전력에도 밸런스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호투로 7이닝을 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최고 148km의 몸쪽 꽉 찬 직구도 거침없이 던질 수 있는 기량을 뽐낸 값진 1승이다. 조각났던 발목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선입견 속 묵묵히 연습에 매진하던 박정배.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철심 가득한 왼 발목이 아니라 동갑내기 아내 장희선씨와 딸 가율이, 그리고 세상에 첫 발을 기다리는 둘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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