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지난 13일 대구구장. 삼성과 KIA의 경기가 우천 연기되기 전 5명의 삼성 투수들이 1루 원정 덕아웃을 찾았다. 투수조 맏형 정현욱을 필두로 권오준·오승환·안지만·차우찬이 비좁은 복도에서 하나둘씩 덕아웃 감독석으로 얼굴을 내밀어 우렁차게 인사했다. 2010년까지 삼성을 이끌었던 옛 스승 선동렬 KIA 감독에게 인사하기 위함이었다.
옛 제자들을 반갑게 맞이한 선동렬 감독은 "역시 여름이 되니까 다들 올라오네. 우찬이도 이제 올라오고"라며 덕담을 건넸다. 권오준이 "아직 멀었습니다"라고 답한 뒤 "감독님 살이 너무 빠지셨다"고 짐짓 걱정했다. 선 감독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렇다"며 허허 웃었다. 장난기 많은 안지만이 "(정)현욱이형은 요즘도 감독님 눈치를 보던데요"라고 하자 선 감독은 "이제 안 혼낼테니 우리한테는 살살 던져라"고 농담을 던졌다.

제자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낸 선 감독은 좀처럼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들과 함께 고생한 옛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명이었던 그들은 선 감독의 지도 속에 이제는 어엿한 한국프로야구 대표 선수들로 발돋움했다.
선 감독은 2004년 수석코치로 삼성에 합류했다. 당시 김응룡 감독은 선 감독에게 투수운용의 전권을 맡겼다. 선 감독은 "감독할 때보다 더 신경쓸게 많았다. 투수운용에 관한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했다"고 떠올렸다. 그래서 스프링캠프 때 3000투구로 혹독하게 투수들을 조련시켰다. 배영수·권오준·정현욱·윤성환·안지만이 당시 선 감독의 조련 속에 성장했다. 이듬 해에는 오승환 그 다음해에는 차우찬이 차례로 삼성에 입단했다.
선 감독은 "그때만 하더라도 다들 무명이었다. 전지훈련 가서 정말 혹독하게 가르쳤다. 이전까지 많은 공을 던지지 않은 선수들에 한해 3000구를 던지게 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예습과 복습을 확실히 하고, 단체훈련 외에 개인훈련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다. 선수들이 힘들었을텐데 그래도 아프다고 하지 않고 성실하게 열심히 따라줬다. 이제 우리나라 대표하는 투수들이 됐다"며 옛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보기만 해도 배 부르다"며 연신 미소를 지은 선 감독이었지만 현실 고민이 닥치는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쟤들을 이겨야 한다"고 현실을 인식한 선 감독은 "우리팀 선발들은 제 몫을 하고 있지만 불펜이 아쉽다. 기존의 손영민·심동섭·임준혁이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KIA는 불펜 평균자책점이 4.52로 최하위. 삼성(3.07)이 이 부문 1위를 지키고 있다.
옛 제자들을 떠나보낸 선 감독은 "이제 KIA에서도 그렇게 좋은 투수진을 만들어야지"라며 미소 속에서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어쩌면 올해 가을 캠프를 시작으로 내년 시즌 스프링캠프까지 혹독한 훈련을 예고하는 전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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