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한국시각) 미국 캔자스시티 카우프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메이저리그 제 83회 올스타전 식전 행사에 지팡이 하나를 짚은 머리가 히끗히끗한 신사에게 특별상 시상식이 거행됐습니다. 주인공은 스티브 팔메르모(63). 21년전까지 메이저리그 심판이었고 현재는 감독관입니다.
그가 등장하자 카우프만 구장의 4만여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한참동안 보냈습니다. 캔자스시티 오버랜드 파크에서 출생한 팔메르모는 1977년부터 91년까지 15년간 활동한 아메리칸리그 베테랑 심판입니다.
그는 1977년에 구심들이 당시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양손으로 붙잡고 앞 가슴을 가리는 외부 보호대(아웃 사이드 프로텍터)를 거부하고 요즘처럼 상의 속에 넣고 사용하는 인사이드 프로텍터를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무 소재에 바람을 불어넣은 아웃 사이드를 착용하면 판정하기에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몸을 보호하기엔 부족하지만 처음으로 인사이드를 택한 것입니다.

그는 1983년 월드시리즈와 세 차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시리즈, 디비전 시리즈와 올스타게임 한 차례씩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담당했던 유명한 경기는 1978년 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의 10월 2일 열린 플레이오프 진출 단판 결정전입니다.
이 해 보스턴은 선두를 질주해 7월 17일까지 14게임차로 양키스를 앞섰다가 마지막 3연전에서 동률을 허용하고 결정전을 벌였습니다. 최종결정전에서도 보스턴은 3-2로 리드했지만 9회말 물방망이 더키 덴트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고 양키스가 기적적으로 승리했습니다. 그 유명한 ‘보스턴의 참패(Boston Massacre)’입니다. 양키스는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해 LA 다저스를 제치고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팔메르모의 또 하나의 인상적인 경기는 양키스의 좌완 데이브 리게티(현 샌프란시스코 투수코치)가 1983년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작성했을 때 구심을 맡은 게임입니다. 1981년 신인왕 리게티의 당시 대기록은 양키스 사상 56년에 돈 라슨이 퍼펙트게임을 수립한데 이어 두 번째 노히트 게임이었습니다.
심판으로서 뛰어난 활동을 하던 그는 1991년 7월 7일, 달라스에서 레인저스 경기를 본 다음 동료 심판들과 함께 캠피시 이탈리안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주차장에서 식당 여종업원 두명이 강도들에게 습격을 받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쫓아나가 제지하려다 등에 총격을 받은 것입니다. 척수손상을 입은 그는 하반신이 완전마비됐고 의사들로부터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해 월드시리즈에 휠체어를 타고 나가 시구를 하기도 한 그는 재활치료에 매달렸고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재단을 만들어 척수손상 치료법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그는 사고가 난 91년 가을 월드시리즈에 초청 받아 휠체어에 앉아 시구를 하기도 하면서 재활치료에 매달려 3년 후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걸음도 조금씩 걷게 돼 한쪽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하고 지팡이를 짚게 됐습니다.
그가 다니기가 힘들지만 어느 정도 스스로 걷게 되자 메이저리그는 그를 마이너리그 감독관으로 일하게 해 요즘 그는 주로 트리플 A 리그에서 활동합니다. ‘아더 애쉬 용기 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메이저리그 심판 명예의 전당에 2003년에 올랐고 2005년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마련한 티볼게임에도 출전했습니다.

그의 유니폼 번호 14번은 심판계에서 영구결번 됐습니다. TV 고정 출연도 하면서 그는 야구 비디오 게임에는 그의 목소리를 제공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날 MBC 스포츠가 중계한 올스타전은 40년된 카우프만 구장이 3년전 2,800억원을 들여리빌딩해 ‘왕관의 보석’이라는 별칭답게 아름다워 부러웠고 팔메르모 심판의 등장과 시상, 팬들의 갈채가 돋보였습니다.
우리 프로야구에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심판이 나오고 이들을 팬들에게 부각 시키는 자리를 야구계에서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